추억의 스케치북

 

[김대열] 20130929 연중 제26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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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9월29일 연중 제26주일 복음묵상

 

“부자도 죽어 묻혔다.” (루카16,22)

 

모두가 죽는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던지 세상에 나온 이는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면서 오늘을 살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만약 우리가 세상에 나면서부터 좀 더 죽음을 의식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보다 후회 없는 삶을 만들 수 있으리라.

만약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좀 더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 보다 예쁜 삶을 만들 수 있으리라.

만약 우리가 세상을 마무리하면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보다 가치 있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것이 마음대로 안 되나 보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안다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허무한 욕심을 이겨내기가 힘든가 보다.

 

부잣집 대문 앞에서 문전걸식으로 연명해야만 했던 라자로와 그 라자로를 방관했던 부잣집 주인의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난이 천국의 조건이고 부유함이 지옥의 조건이라는 것이 아니다.

 

첫 번째 메시지는 유한한 우리의 삶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유한한 삶 때문에 영원한 삶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고,

세 번째는 영원한 삶을 위해 유한한 삶을 정말 잘 살라는 메시지이다.

 

만약 우리가 이 유한한 삶이 전부이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면, 세상의 악과 부조리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

하지만, 이 삶은 영원한 삶을 위해 주어진 기회의 장이고, 나그네길임을 의식할 수 있을 때, 가치와 덧없음을 식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분명 세상에 빈곤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이 있는 한, 가진 자들은 복음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로운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

덧없이 끝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것이 이 세상에 나온 삶의 가치를 이해하고 참된 희망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믿는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부자가 상징하는 것은 결국 허무하게 끝나는 욕망일지도 모른다.

잘 죽기 위한 아름다운 삶이 복음의 가르침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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