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대열] 201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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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1월10일 토요일 복음묵상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요한3,26)

 

세례자 요한을 따르던 제자들이 위기감을 감지합니다.

자신들은 스승 요한이 조상 때부터 기다리던 메시아이자 그리스도이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스승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앞서 파견된 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스승이 그리스도라고 증언했던 예수님이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스승이 아닌 예수님께 몰려가 세례를 받고자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 중 하나였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분명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따른다는 것, 그것도 인생을 걸고 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닙니다.

요한의 제자들 역시 요한을 따르고자 결단을 내리기에는 많은 포기와 각오 그리고 희망이 함께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대 밖의 이야기를 스승으로부터 들었고, 거기에다 스승이 증언한 분의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면서 적지 않은 마음의 동요가 있었음이 분명할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해 자격지심을 느끼거나, 더 나아가 열등감에조차 빠질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더 없이 나름의 가치와 소명을 가지고 있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분명 ‘어떤 길을 걷는가’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옳지 못한 길의 범주에 들어 있지 않다면 우리의 길은 가치가 있는 좋은 길입니다. 아무리 좋은 길이라 한다 해도, 그 길에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 좋은 길은 오히려 불행한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삶의 내용, 이른바 삶의 질에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의 질은 복음적인 기준으로 재어야 합니다.

 

구세사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획을 위해서는 세례자 요한의 길도 필요했고, 예수님의 길도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도 필요했습니다.

누구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에서 가치를 찾는 것을 넘어 소명의식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삶이라 한다면 우리는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무엇보다도 삶을 바라보는 마음에 달려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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