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 용서, 하느님 나라의 문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이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께 어떻게 기도해야하는 지 알려준다. 신부님들은 청하지만 말고 먼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라고 나무라지만,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는 거의 다 청원이다. 가난한 이가 부자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죄인이 구원자게 갖는 당연한 마음이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있는데, 그 한 가지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용서이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용서해야하는 줄 잘 알지만 잘 안 된다. 미움, 증오, 복수, 상처의 올가미에서 풀려나 더 크고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좋은 것들을 많이 누리고 싶지만 잘 안 된다. 희생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행동이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공동선을 위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희생은 어렵지만 가끔 영웅적인 마음으로 희생을 실천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수를 위해서는 불가능하다. 어떻게 그들을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모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용서하셨고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아버지 하느님께 간청하셨다. 그분은 불가능한 일을 하셨다. 그분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 예수님의 사명 안에 죄인을 위한 희생이 포함되었고 또 그분은 신성을 지닌 분이셨으니까 그런 용서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웃들의 용서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원수들이 자신에게 한 짓을 깨끗이 잊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득 과거 일이 생각나 여전히 괴롭고, 그 순간 끓어오르는 복수심이 그들을 집어삼킬 듯이 덮쳐오지만 그들은 그것을 견디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과 아주 가깝다. 용서는 하느님 나라에 드는 문이다.
주님의 기도에서 용서는 내가 하느님께 용서받는 전제 조건처럼 보인다. 그런데 예수님이 알려주신 아버지 하느님과 달라서 이상하다. 만 탈렌트나 되는 엄청난 빚을 탕감해주고, 당신의 재산을 다 탕진한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를 마을 어귀에서 한 없이 기다리는 속도 없는 아버지 같은 분이 우리 하느님이라고 하셨는데, 용서에 대한 조건이 달리다니. 그럴 리가 없다. 하느님은 용서하셨고, 용서하시고, 용서하실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믿지 못할 뿐이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해보지 못한 이가 어떻게 그런 용서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하느님은 이미 용서하셨으니, 그것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웃을 용서하면 된다. 원수까지 용서한다면 그는 이미 하느님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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