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1월 2일(위령의 날) 강 건너

이종훈

112(위령의 날) 강 건너

 

확실히 알고 있는 진실이 하나 있다. 나는 언제나 죽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죽어 없어질 텐데도 일하고 노력하고 고민하는 것은 죽기 싫어서가 아니라 죽음을 너머 무엇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죽음은 비극적인 종말이 아니라 강을 건너가는 일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다면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희생하는 것은 헛된 일이고, 게다가 하느님이 죄인을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것은 더욱 헛된 일이다.

 

하지만 교리적으로 알고 있다고 해서 현실적인 수고스러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굳게 믿는다고 고백해도 현실은 그저 차갑고 냉정한 현실이다. 조금도 바뀌지 않고 한 발작도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차갑고 무정한 현실은 나에게 그 마음과 지향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누구는 자신을 위해서, 누구는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또 다른 누구는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수고한다.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셨나? 누구를 위해서 그런 일을 하셨나? 지금은 예수님의 삶에 대해서 묵상하고 연구하고 그러지만, 사실 그 당시 예수님이 하신 일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병자 몇 명 치료하고 여기저기서 설교하신 것이 전부다. 다른 능력 있는 사람도 그 정도는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돌아가셨다.

 

오늘 내가 하는 일도 그와 비슷하다. 뭔가 위대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어제와 거의 같은 일들뿐이다. 게다가 별 효과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마태 6,4) 나를 보고 계신다. 아니, 나와 함께 일하신다. 그분은 의인도, 선인도 아닌 죄인들을 위해 일하시고 목숨을 내놓으셨다.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고, 보답도 바랄 수 없는 이들을 위해서 일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셨다. 맞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지혜 2,23).” 우리는 원래 죽지 않는다. 오늘 내가 하는 이 보잘 것 없는 일들도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이기를, 강 건너 삶의 시작임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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