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6월 16일 마음의 단식

이종훈

6월 16일 마음의 단식

 

그냥 하는 행동은 없다.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행동에는 언제나 이유와 의도가 어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무의식적인 부분이 훨씬 크다고 한다. 만일 모든 행동을 의식하며 산다면 아마 너무 피곤해서 훨씬 더 많이 자야 할지도 모른다.

 

무의식에 담겨 있는 삶의 원리가 선하고 또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본능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욕구들이 일어나면 의식은 그것의 정당성을 보장해주고, 그것을 채우려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렇게 행동한 후 우리의 양심은 그것이 옳지 않았다고 고발한다. 양심과 우리 영혼은 상처를 입어 아프고 괴로워한다.

 

예수님은 겉으로 보이는 행위보다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 5,27-28).” 외적인 행위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주도한 마음을 말씀하셨다. 사실 한 사람의 됨됨이는 그의 얼굴이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마음 씀씀이를 보고 그의 됨됨이를 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얼굴과 행위를 넘어 그들의 마음을 보셨나보다.

 

이 육체를 지니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 줄 잘 알면서도 많은 경우 육체의 노예가 된다. 마치 그에게 많은 빚이라도 진 것처럼 그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고 만다. 그 순간 기억상실증 환자라도 된 것처럼 아프고 괴로워했던 시간들을 잊어버리고 그의 지시에 따른다. 우리는 그의 폭력에 대항해 싸워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단지 그 폭력을 견디어낼 뿐이다. 그러다가 어쩌면 눈을 잃고, 팔을 잃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차피 그것들은 하늘나라에 가지고 갈 수 없고, 거기에서는 쓸모도 없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 5, 29-30).”

 

“좋으신 예수님,

저는 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말뿐이지

마음과 행동은 거의 예전에 하던 그대로입니다.

주님의 자비와 용서를 믿지 않는다면

그나마 저의 욕구들을 거스르겠다는 결심도 하지 못합니다.

사실 그 결심은 거스르겠다는 것이 아니라

욕구의 폭력을 견디어내 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단식하는 날입니다.

밥을 한 끼 먹지 않는 날이 아니라

한 끼 거른다고 죽지 않으며

육체의 노예도 아니고, 빚을 진 적도 없다고

저 스스로에게 선언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외칠 수 없는

이웃들의 그 배고픔에 멀리서라도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고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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