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성녀 아녜스) 새로운 법
사랑하지 않음은 죄다.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랑은 다 채울 수 없는 의무라서(로마 13,8) 마지막 날까지 죄인일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다고 걱정하고 심판의 날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거룩한 죄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을 아프게 한 모든 죄도 하느님은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하느님은 심판자시기 전에 자비로운 아버지시고 그분의 사랑은 완전하다. 우리도 그분을 닮아 원수까지 사랑하는 완전한 사람(마태 5,48), 자비로운 사람(루카 6,36)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잘 해주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다. 어쩌면 하지말래도 그렇게 할 거다. 그런 사랑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 악한 사람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의 사랑은 더 커지고 넓어져야 한다.
그런 사랑과 자비를 결심하면 온 몸이 뜨거워지며 저 높은 하늘에 오른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실제로 그렇게 실천해야 할 때가 오면 곧바로 땅 속 깊은 곳으로 쳐 박히고 만다. 그런 자신이 부끄러우니 그렇게 사랑하지 못하고 자비로울 수 없는 이유를 찾는다. 그것은 엄격함, 정의, 교육 등이다. 그것이 핑계임을 잘 알면서도 그런 모진 마음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이 근거 없는 엄격함에 대한 충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죄와 벌은 왜 하나여야하나? 그러나 이렇게 모진 율법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무너져버린다. 이 원리로는 하느님의 죽음을 설명할 수 없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법, 모든 인간이 처음부터 바랐던 그 법, 사랑과 자비 그리고 용서의 법을 주셨다. 그를 벌주지 않아도, 바꾸어 놓지 않아도 된다. 내가 손해 봐도 괜찮다. 이런 법을 따르려면 새로운 마음이 필요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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