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연중 31주일) 하느님사랑인 이웃사랑
어느 날 어떤 단체의 피정 파견미사를 봉헌하러 갔습니다. 제의실에서 준비하고 있는데, 봉사자 한 분이 들어오셔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대영광송을 어떻게 할 거냐고, 신자들끼리 교송으로, 아니면 사제와 신자 전체가 교송으로 할 건지 물었습니다.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운이 빠집니다. 전례를 부드럽게 잘 진행하시려는 그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런 것이 그렇게 중요한 질문거리가 되는 것이 속상합니다. 예수님이 주신 하느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그동안 하셨던 대로 그리고 편하신 대로 하면 제가 따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신명 6,4-6).” 이스라엘 백성은 때마다 이 기도문을 매일 외우며 기도했답니다.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도 그러셨을 겁니다. 그런데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어떤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 계명에 더하여 이웃사랑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사랑을 둘째라고는 하셨지만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31).”고 마무리하신 것을 보면 이웃사랑은 하느님 사랑에 못지않게 큰 계명이라고 여긴 것이 분명합니다(마태 22,39-40). 그리고 예수님의 그런 대답에 그 율법학자가 신이 나서 한 발작 더 나아가 이렇게 맞장구를 쳤습니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마르 12,33).” 이 대화를 보면 그는 몰라서가 아니라 이웃사랑이 중요함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율법에 쓰여 있지는 않아도 이웃사랑 없는 제사와 하느님 사랑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이웃사랑 없는 하느님사랑은 교만과 독선, 단죄와 심판이, 하느님 사랑 없는 이웃사랑은 소유와 지배, 미움과 폭력이 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하느님을 지독하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느님께 제사를 올리거나 사람들 앞에서 오랫동안 기도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하느님 사랑을 송두리째 남김없이 이웃사랑 안에 쏟아 부으셨습니다. 그분의 그 헌신적인 이웃사랑이 곧 그분의 지극한 하느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향한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셨습니다.
나 혼자 사랑은 없습니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으니 예수님이 오셨고, 그 예수님은 다시 가장 작은이들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마태 25,40). 그리고 동시에 내 안에 계시는 같은 그분은 가장 작은이들을 도와주면서 진정으로 당신을 섬기고 사랑하라고 초대하십니다.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 가장 작은이들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 섬깁니다. 그 율법학자는 자신이 품었던 생각과 같은 말을 큰 스승에게 들어서 아주 기뻐했고 예수님도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셨을 겁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르 12,34).” 그런데 하느님 나라에서 먼 곳에 있으나 멀지 않은 곳에 있으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사는 기쁨과 행복은 아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만의 것입니다. 이웃을, 특히 먼저 가장 작은이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십시다. 그것이 하느님을 진정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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