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해피엔딩
철학자나 신학자나 답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는 선하신 하느님이 계시는데 이 세상에는 왜 악과 고통이 존재하고 선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일거다. 무지하거나 근본주의적인 사람들이 고통은 죄의 결과라고 함부로 말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곤 한다. 울부짖으며 던지는 그 질문에 고개를 숙이고 함께 우는 모습이 그에 대한 합당한 답변일거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루카 13,2-5).” 예수님의 답변이다. 비극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 삶을 바꾸지 않으면 그의 삶은 비극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우리에게 당신을 믿고 따르면 영원히 살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한 11,26). 최초의 인간은 구백삼십 년을 살았고(창세 5,5) 그의 자손들도 수백 년씩 살았다지만 결국 다 죽었으니 예수님의 약속은 여기서 계속 사는 게 아니다. 장수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걱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죄를 피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희생을 무기력하게 할 수 있는 죄는 없다. 그렇다고 죄를 지어도 좋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로마 6,15). 관심사를 바꾼다, 나에서 너로. 나는 걱정할 필요 없다, 주님이 책임지실 거니까.
나에게도 어김없이 그 날이 오겠지만 도둑처럼 덮치지 않기를 바란다(1테살 5,4). 하느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기 다른 선물을 적당히 주셨다(마태 25,15). 눈은 중요하지만 모래 알갱이 하나에도 온 몸이 괴롭다. 발은 볼 수 없지만 모래밭을 휘젓고 다녀도 끄떡없다. 각자 나름 역할이 다 있다. 그래서 다 필요하고 다 중요하다. 미래를 대비함은 내가 아니라 이웃들과 후손들을 위함이다. 내일을 준비하지만 나에게 내일이 있다고 어떻게 보장하나? 그저 오늘 하루뿐이다. 그렇게 그렇게 산다. 평생을 오늘 하루에 담아 꽉 차게 산다. 그러면 나의 삶은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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