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연중 20주일) 하느님 편에 서 있기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만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진리를 따르려면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소외된 이들을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보호해서 모두가 평화롭게 함께 잘 사는 사회가 된다. 평화는 진리를 따르는 공동체에 주어지는 선물이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억압된 고요는 평화도 구원도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는 하느님의 사랑함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교회는 세상일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거나 사회와 국가체제나 제도에 도전함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서 매우 안타깝다. 교회는 정치를 하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직무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사회와 정치권을 향해 때로는 위로와 지지 그리고 반대로 질책과 저항의 메시지를 낸다. 그것은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당신이 제자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까지 사랑하셨던 대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고 의지라서 행동이고 실천이다. 특히 가장 작은이들과 소외된 이웃들을 우선 선택해서 보호하고 도와주며 양육한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약한 자녀에게 더 마음을 쓰고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의 마음과 같다. 교회는 세상보다 앞서 이런 이웃들을 돕고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고아원, 양로원, 무료진료와 급식센터, 미혼모와 자녀 쉼터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좋은 일을 하면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순조롭고 잘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이 잘 되어 가면 뭔가 잘못 되었다고 의심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주님을 따르면 세상이 주님께 했던 대로 우리에게도 할 것이 때문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요한 15,18).”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하느님 편에 서 있으려는 사람과 그 반대편에 있으려는 사람이다. 그 중립지대는 없다. 그런 곳을 찾는 사람은 하느님의 반대편에 서 있기를 바라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니까. 구원은 하느님이 개인에게 개별적으로 선사하시는 은밀한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하느님의 다스림에 순종하여 누리는 평화 속에서 각 구성원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는 선물이다. 그래서 하늘나라는 좋은 공동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 예수님은 사랑의 불이 타오르기를 바라셨다. 불은 그 뜨거움으로 불순물을 떨어내고 나쁜 세균들을 없애 깨끗하게 한다. 주님의 그런 바람과는 달리 그분은 반대를 받는 표징이(루카 2,34) 되셔서 수난을 받고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셨다. 우리에게 꺼지지 않는 아니 꺼질 수 없는 사랑의 불이 되셨다. 주님을 따르는 이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들은 죽지 않는다. 진리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이 영원한 것처럼 주님을 따르는 이들도 그렇다. 이것은 희망사항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이다. 이미 많은 증인들이 우리 앞에 있다.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죄인들의 그러한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히브 12,1-3).”
주님, 저는 주님을 따릅니다. 살아 있는 동안 하느님 편에 서서 좋은 일을 많이 하기를 바랍니다. 그 길에서 만나는 도전 비난 폭력적인 방해에도 그 처음 마음이 사그라지거나 미움과 적대감이나 복수심으로 변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저보다 먼저 주님께서 그러셨음을 기억하고 본래 세상은 그런 곳을 알게 해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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