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성 요한 사도) 다른 눈
스승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 억울함과 절망이었다. 거기에 스승께 다하지 못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할 시신마저 누군가 훔쳐갔다면 그들의 슬픔과 절망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한 20,2) 예수님은 당신의 운명과 죽음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알고 계셨지만 제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남은 꿈속에서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깨닫지는 못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목숨을 내놓았지만 제자들은 그분을 빼앗긴 줄 알았다. 이제 그분은 작은 갈릴래아가 아니라 온 세상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들은 그분을 영영 못 만나는 걸로 알았다. 그런데 그 절망의 시간에 예수님의 말씀들이 기억났고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지만 그 어둠은 빛나는 태양이 떠오를 것을 알리는 보이지 않는 신호 같은 것이다. 살면서 신명나고 기쁘고 밝을 때보다는 건조하고 슬프고 어두울 때가 훨씬 더 많다.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다. 위로의 말을 듣지만 그것이 말뿐임을 나도 그도 안다. 그 어둠을 견딜만한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이런 때 신앙은 나에게 무엇을 해주나? 그것은 말뿐이거나 그 때뿐인 감성적인 위로가 아니어야 한다. 신앙은 수없이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준다.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마태 1,23).’ 그것은 위로도 해결책도 아니고 회피는 더욱 아니다. 위로받고 해결책을 얻고 싶은 기대와 바람을 넘어 나의 삶을 새로운 눈으로 다르게 보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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