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믿음의 어둠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 때문에 가난해지셨고, 제자들은 스승 때문에 가난해졌다. 예수님 때문에 부자가 된 성인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해주셨는데, 그분을 따랐던 이들은 하나같이 가난해졌고 목숨까지 잃었다. 그래도 그들은 기뻤을까?
살다보면, 특히 영적인 여행을 하다보면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전에는 잘 보였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것처럼 감격하고 뜨거웠었는데 이제는 그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들고 모든 것이 시들해 진다. 나는 하느님을 버린 적이 없으니 하느님이 날 버리신 걸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거짓일까? 그렇다고 엉망진창으로 살거나 비윤리적인 것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기쁘지 않고 의심스러운 것이 많아지고 자신도 없어진다.
그래서 구걸한다. 다른 이들의 글, 묵상, 체험을 기웃거린다. 하지만 그것들도 거기서 거기 그게 그거다. 그럴 때 선택은 하나뿐이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8,39).”라고 외치는 것이다. 신앙은 마술이나 요술이 아닐뿐더러 삶의 비법이나 숨겨진 요행의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님을 다시 그리고 더 깊이 알게 된다. 나의 믿음은 겨자씨만큼이나 작고, 내가 만들어낸 믿음은 참 부실하다. 이제는 주님이 직접 그 믿음을 만들어주시기를 청한다. “주님 제가 다시 보게 해주십시오(루카 18,41).”
Alberione, alberione, Catholic, catholic, content, contents, Contents, contents.pauline.or.kr, gospel, Gospel, FSP, fsp, pauline, Pauline, pauline contents, 카톨릭, 가톨릭, 교리, 교리교재, 꿈나무, 바오로가족, 바오로딸, 바오로딸 컨텐츠, 바오로딸 콘텐츠, 바오로딸컨텐츠, 바오로딸콘텐츠,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성바오로딸, 성바오로딸수도회, 성 바오로딸 수도회, 성바오로딸 수도회, 주일학교, 콘텐츠 바오로딸, 콘텐츠바오로딸, 알베리오네, 야고보 알베리오네, 이종훈, 이종훈 신부, 이종훈 마카리오 신부님, 이종훈 마가리오 신부님, 마카리오 신부님, 마가리오신부님, 마카리오신부님, 마가리오 신부님, 마가리오, 마카리오, rio, Rio, 구속주회,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cssr, 강론, 강론말씀, 복음강론, 강론 말씀, 복음묵상, 복음 묵상, 복음 강론, 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영원한기쁨, 영원한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