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그리스도왕 대축일) 하느님의 백성
전례력으로 올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님이 온 누리의 임금님이심을 고백하고 온 세상에 외칩니다. 우리 임금님은 당신의 백성을 지배하지 않고 다스리십니다. 그의 백성인 우리는 임금님께 절대적인 권위를 드리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분께 순종할 때 우리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공서 벽에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집에는 예수님상이 걸려 있습니다. 우리 집 벽에 걸려 있는 것은 예수님사진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 모습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요한 18,35)” 우리는 그분이 왜 그렇게 되셨고 누가 그리고 무엇이 그랬는지 잘 압니다. 그분은 종처럼 우리를 섬기셨고 세상의 권력자들은 그런 하느님을 못마땅하게 여겨 죄인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분의 다스리는 방식은 세상의 그것과 정말 많이 달랐습니다. 아니 정반대였습니다. 낮은 자로서 섬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가져가고 다스리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를 때 지극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순종할 것을 새롭게 다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저런 방식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실 수는 있을지 의심이 생깁니다. 저렇게 약해서는 이 폭력적이고 차갑고 거친 세상을 다스리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혀 고초를 겪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실 때까지 그 부당한 폭력을 막아 선 이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분에게 치유 받은 사람들, 그분의 가르침이 깊은 감동을 받았던 사람들, 그분이 죄인이 아니라 하느님을 경외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때문에 치유의 기적을 행하실 수 있음을 아는 사람(요한 9,31),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기적들을 행할 수 있음을 아는 니코데모와 같은 지식인(요한 3,2), 심지어 도둑도 그분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알고(루카 23,41) 있었지만 아무도 그분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제자들도 다 도망쳤습니다. 단지 힘없는 몇몇 예루살렘 여인들만이 눈물로(루가 23,27) 부당한 폭력에 항거했고 용감하게 그분의 십자가 곁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예수님을 바라보며 울었던 그 여인들을 기억합니다. 그분의 무죄함을 알았지만 세상의 폭력이 무서워 그것을 막지 못해 괴로워했던 이들도 함께 기억합니다. 그들은 폭력에 맞서 싸우지는 못했지만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물과 괴로움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저항이었습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없앨 수 없고, 악을 악으로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요한 18,36).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외면하고 유토피아적인 환상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백성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환상이 아닙니다.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 실업과 고용불안, 양극화와 노령화,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 등 오늘날 우리에게는 많은 도전과 숙제가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고 모두가 다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속임수로 덮으려는 자들과 폭력적으로 뒤엎으려는 자들이 이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나서지만 약자들뿐만 아니라 평화를 바라는 이들의 마음에 상처만 줍니다. 그러던 중 엊그제 삼성전자 사장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거나 고통 받는 노동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습니다. 무려 11년이나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겼습니다. 거대 기업은 속이고 폭력으로 위협했지만 그분들은 끝까지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분들이 그 힘든 시간을 견디어낸 것은 세상을 떠난 자신의 눈물 그리고 다른 약자들의 아픔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정의와 진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승리합니다. 그것들을 위해 세상의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 약자들의 편에서 그들의 천부적인 인권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느님 앞에 섰을 때, 또 그분이 구름을 타고 오실 때 얼굴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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