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얘야, 나다.’
나의 얼굴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나의 행동 안에는 나의 가족이 있다. 나는 그 집안 사람이다. 수도서원을 한 뒤 나의 서명 뒤에는 수도회의 약자가 달라붙었다. 그리고 내 이름보다는 대부분 수사님 신부님으로 불렸다.
하느님은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집안아, 나는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겠다(에제 18,30).” 심판은 철저하게 개인적이다. 당연하다. 그 때에는 내가 어느 집안사람이고 어느 수도회 소속이고 이런 것들이 다 떨어져나간다. 이런 것들은 세상에서 나를 소개할 때 필요했던 것들이다. 하느님 앞에서 이런 것들은 소용없다. 그분은 나를 잘 아신다. 그리고 그 나는 마지막의 그 모습이 아니라 그 때까지 살았던 모든 것이다.
모든 예언자와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외쳤다. 회개는 삶을 바꿈인데, 어떻게 바꾸나? 예수님은 가르치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 여기서 어린이는 보잘 것 없고, 작고, 의존적이고, 보호가 필요한 사람의 상징이다. 세상에서는 크고, 독립적이고, 위대한 어른이 되라고 배웠는데 예수님은 정반대의 길을 말씀하셨다. 지금도 애 같아서 한심하고 부끄러운데 더 애 같이 될 수는 없지 않나? 부모는 못 돼도 그런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어린이와 어른이 되는 길, 자식과 부모의 마음 사이에 그 답이 있나보다.
사람들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과 교회가 준 이름으로 나를 불렀는데 마지막 날 하느님은 나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실까? 둘 다 아닐 것 같다. 그냥 ‘얘야’라고 하실 것 같다. 어두운 밤 풍랑 위로 걸어오시며 “나다(마르 6,50).”라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신분을 밝히셨던 것처럼 어떤 이름도 없이 나를 부르실 것이다. 부모님 가족 친구들은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그 목소리만으로 아는 것처럼 그렇게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채야 할 텐데. 어린이처럼 하느님께 의존하고 부모처럼 사람들을 대하면 그분의 목소리에 익숙해지겠지. ‘얘야,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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