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5월 8일 사랑의 하느님

이종훈

5월 8일 사랑의 하느님

‘♬♪ 말하지 않아도 않아요~.’ 라는 과자 광고 노래가 생각난다.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그것은 그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요구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알아챌 수 있게 하고 그것을 그를 위해서 하게 한다. 그리고 기뻐한다. 내가 아니라 그가 좋아해서 내가 더 기쁘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고, 하느님을 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당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예수님처럼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그런 증언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무조건적으로 용서와 자비를 베푸는 사랑의 하느님은 무능해보였던 것 같다. 그래도 예수님은 당신이 뵙고 아는 하느님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곧 당신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죽음이 위협해도 그분은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당신 자신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이 아들이 그래주기를 바라심을 알기 때문이었다. 세상 어떤 부모가 자기 아들이 희생되기를 바라겠는가? 하느님도 그러실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감출 수도 없었다. 아마 그래서 하느님은 아드님에게 아무런 부탁도 요구도 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을 지독히도 사랑하셨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해야 그분이 기뻐하실지 알았고, 또 그렇게 행했다,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 얻는다(요한 10,17).”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는다. 수도자는 도를 닦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드린 사람이고, 하느님의 일을 위해 따로 떼어낸 사람이다. 한 마디로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축성된 사람이다. 그들은 세상이 모르는 신적인 사랑을 체험한다. 그 사랑은 헌신할 때 체험된다.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훨씬 더 행복하다. 그럴 때 자신이 참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참 자아에 근접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너를 위해 존재한다. 나를 위해 사는 사람은 ‘나’라는 작은 감옥에 갇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반면에 너를 위해 사는 사람은 그 작은 감옥에서 해방되어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하며 즐기다가 마침내 영원히 살게 된다. 내 안에, 너 안에 그리고 나와 너 사이에 하느님이 계신다. 하느님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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