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9월 9일 버섯 한 봉지 (+ 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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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버섯 한 봉지

 

오랜만에 동네를 벗어나 시골 기차역 주변에서 지인과 저녁을 먹었다. 가을에는 버섯 철이라고 작은 버섯전골 식당에 들어갔다. 뉴스에서 본 것처럼 자리마다 투명 칸막이가 있었다. 주문받는 분 말투가 이상해서 물어보니 베트남 사람이라고 했다. '반찬은 셀프'라고 골판지에 손글씨로 엉성하게 써 놓은 걸 보니 최근에 종업원이 그만두었다고 생각했다. 반찬을 가지러 갔더니 반찬통이 거의 바닥이었다. 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그 베트남 사람은 이미 주방 바닥 물청소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7시가 조금 넘었는데.

 

그 베트남 사람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전화받고 돈 받고 인사하고... 마스크 넘어 그의 눈이 왠지 무겁고 슬퍼보였다. 내 마음이 그랬던 것 같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느꼈던 것 같다. 7시 반인데 식당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식당 주인아저씨가 버섯을 한 봉지 가득 담아주었다. 자신이 직접 기른 건데 남아서 손님들에게 그냥 준다고 했다. 엉겁결에 고맙다고 인사하며 받았지만 역시 마음 아픈 일이었다. 그걸 다 요리해서 팔았어야 했다. 그래도 그 주인의 마음 씀씀이는 감동이었다. 식당을 나오며 서툰 솜씨로 ‘까믄’하며 베트남 말로 인사했다. 그게 내가 거기서 전할 수 있는 위로와 공감과 희망의 전부였다.

 

식당 밖은 한산했다. 그 동네에서는 나름 번화가였는데 말이다. 그 한산함이 요즘 자영업자, 소상공업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말해주고 있었다. 또 한 번 마음 아프고 거기에 배부르게 서 있는 내가 미안하고 왠지 죄인인 것 같았다. 얼마 전 지금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자금이 1200조원이라고 했다. 올해 나라 예산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이럴 때 자신의 곳간을 열어 어려운 사람들에 나눠주는 멋진 부자는 없는 걸까? 한 쉬며 나쁜 생각을 했다. 나중에 심판 때에 자신의 곳간에 쌓아둔 금액만큼 금덩어리로 환산해서 등에 지고 살게 했으면 좋겠다고.

 

집에 오는 길에 작은 감동을 준 그 버섯으로 뭘 해 먹을까 생각하다 우리 동네에서 식당을 하는 교우가 떠올랐다. 주님의 말씀으로 들렸다. 그 식당에 들러 그 교우에게 서툰 농담과 함께 버섯 봉지를 건네고 귀가했다. 그렇게 내가 받은 위로가 그에게도 전해졌기를 바란다. 서울 한 본당에서 확진자가 나왔단다. 사실 개신교회에만 대면 예배 중단을 요구하는 게 이상하기는 했다. 그 교우가 미사 참례 중에 감염된 게 아닐지라도 우리 교회도 미사와 모임을 중단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상처 입은 세상과 연대하고 있다는 표징이 되게 말이다. 지금은 미사와 모임보다는 슬퍼하고 절망하는 이웃들과 함께 있고 위로할 때다. 그렇게 우리는 희망을 전한다. 그 옛날 호세아 예언자를 통해 하셨던 하느님 말씀이 기억난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호세 6,6).” 지금 여기서 하느님이 바라시는 게 무엇인지 잘 알아야겠다.

 

주님, 거저 받은 한 봉지 가득 담긴 그 싱싱한 버섯이 주님의 위로와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주님은 절대 저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저희와 함께 지금 주님도 고통을 겪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참고 그리고 눈을 돌려 이웃을 살피고, 눈을 들어 당신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싶지만 마음뿐입니다. 제겐 한계가 많습니다. 어머니를 찾는 모든 이들을 위로해 주시고 조금만 더 견디게 위로하고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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