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축복이지만 실제 삶은 고통이다. 그래도 좋은 친구, 함께 걷는 사람이 있으면 고통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전이고 과제로 달가운 멍에가 된다. 그런데 목적지를 잊거나 길을 잃으면 함께 걷는 이도, 달가운 멍에도 무의미해진다.
나와 다른 성격을 지닌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힘들지만 다른 마음을 지닌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을 훨씬 더 힘들다. 나와 그가 같을 수는 없지만 한 마음, 하느님을 찾는 마음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한 마음이고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면 함께 사는 불편함은 달가운 멍에요, 나를 단련시키는 좋은 훈련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무엇을 찾느냐(요한 1,38)?”라는 질문은 “왜 나를 따라나섰느냐?”로 들리고,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은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또는 “주님을 더 알고 싶습니다.”라는 대답으로 들린다. 그렇게 지낸 짧은 하룻밤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라고 고백할 수 있는 확신이 생겼을까?
아마 그 날 밤에 일어난 것은 주장, 이해, 설득, 납득, 수긍 같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현존에 대한 긍정과 즉각적인 수용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찾고 있던 것을 만났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것을 찾고 있었기 때문 일거다. 예수님의 인성에 녹아 있는 신성이 그들의 마음의 눈을 열어주어 그것을 볼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다.
“주님, 사람들 안에 새겨 넣으신 당신의 모습을 보게 해주시고, 제 안에서 말씀하시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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