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선택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 보면 죽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아브라함, 모세, 예수님이 그런 분들이었다. 예수님을 본 사람은 곧 하느님을 뵌 사람들이었다(요한 14,9). 그들은 죽기는커녕, 오히려 생명을 되찾았다. 병자는 치유 받고, 악령에서 풀려났으며, 새로운 희망을 지니게 되었다. 예수님은 곧 하느님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왜 하느님을 만나면 죽게 될 것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하느님 앞에서 얼굴을 들고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천 번 만 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얼굴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얼굴을 들게 해주셨다. 우리의 변호사가 되어 주셨다. 무죄선언을 이끌어내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알아주신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크게 좋아지지 않는 우리를 이해하시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생명까지 바쳐가며 우리를 변호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살았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35-36).” 그분을 만나 생명과 희망, 새로운 삶을 찾은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분 때문에 혼란을 겪은 사람들도 있었고, 또 그분을 반대하며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분의 출현으로 인해 사람들이 분열되었는데, 그들의 속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예언했던 시메온의 말이 생각난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하느님을 미워하고 저주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실제로 하느님이 우리들 가운데에 나타나자 그분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살해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악한 사람들이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악은 하느님 앞에 얼씬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새로운 길, 새로운 계명, 참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갈등한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새로운 삶이기 때문이다. 야곱이 야뽁 강가에서 밤새 하느님의 사람과 씨름을 했던 것처럼 우리도 진리 앞에서 선택하기 위해 그렇게 갈등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하느님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설령 그 길에서 비난받고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고 또 죽게 되더라도 그 길을 선택하고 가게 되기를 바란다. 이런 마음을 주님께서 몰라주시지 않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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