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하느님의 집(삼위일체 대축일, 6월 11일)

이종훈

하느님의 집(삼위일체 대축일, 6월 11)

 

꽃향기보다는 숲이 뿜어내는 향기를 훨씬 더 좋아해서 쉬는 날이면 숲을 찾아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얼마 전 단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마침 여건이 돼서 숲을 찾아 갔습니다비가 와서 그랬는지 그 큰 숲에 홀로 있는 것 같았습니다메말랐던 땅이 단비에 젖고 또 갖가지 식물들이 비를 맞으며 뿜어내는 향기가 너무 좋아서 눈물이 다 날 정도였습니다황홀경이 이런 것인가 싶었습니다그렇게 감격하며 숲길을 걷다가 저절로 멈추어 서게 되었고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이렇게 좋은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리고오랜 시간 청하고 있는 것들여러 사람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던 많은 것들을 꼭 들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마치 아이가 엄마에게 떼를 쓰는 것 같았습니다여러 기도들이 끝나갈 무렵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 이곳에서 살 수 없을까요?’라고 말씀드리기도 했습니다그러면서 베드로 사도가 아름답게 변모하신 예수님을 뵙고 엉겁결에 초막 셋을 지어 그곳에서 살게 해드리겠다고 말했던 기억도 났습니다하지만그럴 수는 없었습니다그곳은 제가 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의 그 감격은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삶하느님 나라에서 여러 성인들과 함께 사는 삶을 살짝 맛보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무엇이 그토록 감격스럽게 했을까요아마도 진실과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자연 안에는 거짓이 없고생명으로 충만합니다사랑은 생명을 만들어냅니다하느님은 모세가 계명을 받을 때 당신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탈출 34,5-6).’” 이제 우리는 그 하느님이 예수님이 늘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시고 함께 생활하셨던 바로 그분이심을 잘 압니다아버지 하느님은 외아드님에게 모든 권한을 넘겨주시어 세상으로 보내셨고아드님은 언제나죽는 것까지 아버지의 뜻대로 사셨습니다하늘로 되돌아가신 후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삶을 기억나게 해주시고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믿고 고백하게 도와주십니다그렇게 이 세 분은 하나이십니다우리가 고백하는 삼위일체 하느님은 철학적논리학적존재론적으로 증명을 요구하는 명제가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세 분의 지극하고 완전한 사랑이 서로 하나가 되게 했고우리는 은혜롭게도 그 하느님의 사랑을 얻어 누리고 있습니다.

 

사랑 안에는 거짓이 없습니다사랑은 언제나 상대방으로 향하는 것을 넘어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게 해서 둘을 하나로공동체를 하나로 만듭니다그것은 신뢰와 순종으로 자신을 상대방에게 넘겨주는 자기증여입니다하느님은 세 분의 공동체이면서 한 분이십니다하느님 공동체 안에는 완전한 신뢰와 남김 없는 순종이 있습니다그런 공동체에 안에서 아니 그 근처에서만 살아도 행복할 겁니다그날 숲에서 제가 감격해 멈추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그런 공동체 안에서는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그 숲에서 살고 싶었지만 제가 속한 수도 공동체가 제 집입니다사람은 모두 공동체를 이루고 생활합니다기본적으로는 가정 공동체수도 공동체 그리고 멀게는 마을직장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가정과 수도 공동체는 이론적으로 사랑신뢰로 따뜻한 곳이어야 합니다하지만안타깝게도 현실은 이론과 거리가 있음을 경험적으로 너무나 잘 압니다피를 나눈 부모 형제들이면서도 경제적인 이유성격상의 이유 등으로 서로 쉽게 반목하게 됩니다하느님께 그리고 세상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겠다고 모여 사는 수도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가장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신뢰가 깨질 때인 것 같습니다신뢰는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주는 것이라서 그것이 깨질 때 실망분노슬픔으로 괴롭습니다마음을 내려놓을 집을 빼앗긴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현실이 이론과 이상과는 많이 다르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부모형제수도자이기 이전에 우리들은 모두 상처받은 죄인들이라서 잘하고 싶어도 잘 안 되고신뢰하면서도 불안하게 되어 있습니다이상이 깨어진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여겨야 합니다모세도 하느님께 백성들을 위하여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주님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탈출 34,9).” 그렇습니다우리는 용서가 필요한 죄인들이고도움이 필요한 부족한 사람입니다그래서 피를 나눈 가족인데도 돈 때문에 서로 싸우고봉헌한 사람들인데도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르겠습니다그런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며용서와 화해하는 법을 배웁니다이런 면에서 공동체는 사랑을 배우는 큰 학교이고인생은 하느님을 배우는 긴 학습과정임이 분명합니다잘 안 되도 살짝 실망하고조금만 슬퍼하며 다시 배움을 시작해야 합니다사랑은 아프지만 참 좋은 것이고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주며마침내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하느님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사람이 되셨다고 믿는다면지금은 그분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사신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그러니 형제 여러분기뻐하십시오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서로 격려하십시오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2코린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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