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3월 10일 부끄럽고 괴롭고

이종훈

310일 부끄럽고 괴롭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선하고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선하신 분은 아버지 하느님 한 분뿐이시고(마태 10,17), 그의 의로움은 그분이 판단하신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듣기 거북하지만 이게 사실이고 진실이다.

 

하느님 앞에 선 나는 알몸이다. 나의 숨은 생각과 내장까지 다 드러나 있다(요한 2,24). 그래서 언제나 부끄럽고 괴롭다. 하느님이 용서하셨다고 믿어도 그 부끄러움과 괴로움이 일순에 사라지지 않는다. 부끄러움과 괴로움이 벌이라면 벌이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용서의 선언보다는 차라리 벌을 받음이 더 마음 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벌을 받는다고 죄의 결과까지 없앨 수는 없다. 자신의 상처는 물론이고 이웃에게 입힌 상처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것이 나의 처지다. 비참하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돌아가신 추기경님의 고백처럼 이제는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지도 못한다. 혹시라도 하고 싶으시면 용서해주시기를 바라며 기다릴 뿐이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신 분이니 내 안에서도 그러한 일을 해주실 수 있는 분이다. 새로운 나를 또 만들어주시는 일이다. 참으로 염치도 없다.

 

부끄러움과 괴로움은 반갑지 않지만 나의 영혼에는 좋은 치료제이고 영양제다.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알면 알수록 하느님이 얼마나 높은 곳에 계시고, 얼마나 넓은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분인지 알게 된다. 하느님은 나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되돌려드리고 싶다. 제멋대로 살라고 그것을 주신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을 택하고 당신의 뜻을 실천하라고 주셨는데, 제대로 써먹어 본 적이 별로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위험하다. 그러니 차라리 돌려드리는 편이 훨씬 이롭겠다. 오늘도 흔들리는 마음으로 부끄럽고 괴로워하며 기도한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제 안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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