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6월 10일(연중 10주일) 너 왜 그렇게 숨어 있느냐?

이종훈

6월 10일(연중 10주일) 너 왜 그렇게 숨어 있느냐?

 

최초의 사람이 죄를 범하고 나서는 하느님을 피했습니다. 하느님이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 하시며 찾으시자 그는 숨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 3,10).” 하느님은 자신을 만드신 아버지이시고 동산의 모든 것을 주신 참 좋은 분이신데 그분을 피해 숨었습니다. 알몸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알몸이라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가 우리 안에 해놓은 일입니다. 내가 지은 죄뿐만 아니라 남이 나에게 지은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하고 좋으신 아버지를 피해 숨게 만듭니다.

 

 

다치면 행동이 불편해지는 것처럼 죄를 지으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불편해집니다. 죄로 상처 입은 마음과 영혼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똑바로 보지 못합니다. 때로는 억지를 부려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됩니다.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려면 무엇보다도 서로 열린 마음이어야 하는데 그들은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죄로 상처 입은 자신의 알몸을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자신을 방어합니다. 하느님도 그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최초의 사람이 알몸이 두려웠던 이유도 아마 전능하신 하느님과 맞설 무기와 자신을 보호해줄 갑옷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일 겁니다. 그에게 하느님은 더 이상 인자하신 아버지가 아니라 죄를 밝혀내서 벌을 내리는 무서운 심판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최초의 사람들은 가죽옷을 입고 하느님의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창세 3,21.23). 그들은 도대체 왜 하느님의 말씀을 어겼을까? 뱀은 왜 그들을 꼬였을까? 성경은 그에 대해 전해주지 않습니다. 악의 근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도 알려주시지 않는 것을 우리가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자꾸 그럴까? 그것을 묻고 캐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거니와 설령 그것을 완벽히 밝혀낸다 해도 여전히 나는 무한 반복되는 죄의 고리에서 풀려나올 수 없을 겁니다. 하느님은 심판자가 아니라 죄의 노예생활을 한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위로하시는 참으로 좋으신 아버지, 어머니십니다. 버릇없이 제몫이라고 아버지의 재산을 제멋대로 나가 거지가 된 작은 아들을 매일 동구 밖에서 기다리는 속도 없는 아버지입니다(루카 15,20).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께로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루카 15,21).”라고 고백하면 그만입니다. 죄와 악의 근원을 밝혀냄이 아니라 잃어버린 낙원, 쫓겨난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거기서는 창 방패 갑옷 가죽옷도 필요 없고,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곳이라서 다툴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갑옷에 또 다른 갑옷을 입고 살았고 또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지내서 그 두꺼운 갑옷은 나의 몸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내 알몸을, 내 마음을, 내 영혼을 생각해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는 사이 내 안에서 하느님은 더 무서운 심판자가 되어버렸으니 어떻게 그 동산, 하느님의 집을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길 잃은 우리를 데려가시려고 하느님이 직접 우리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사실 때 죄인들과 어울리시며 용서하시고 아픈 이들을 치유해주시고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악령을 쫓아버리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그런 분이라고 보여주고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그 약속을 믿습니다. 사실 그게 아니면 죄의 굴레에서 풀려나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 서로 사랑합니다. 서로 위로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곳이 바로 그 잃어버린 동산입니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최초의 사람, 최초의 죄인을 벌주기 위해서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라고 부르셨던 것이 아닙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았으니 두려워말고 그전처럼 기쁘고 평화롭게 지내라는 뜻이었습니다. ‘너 왜 그렇게 숨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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