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간 월요일 4월 24일, 희생
니코데모는 진리를 찾는 사람으로, 솔직하고 맑은 눈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최고의회 의원이면서도 예수님을 찾아와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한 3,2).”라고 고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도 그는 최고의회에서 예수님을 평가할 때 그들의 율법 규정을 객관적으로 적용하였고(요한 7,53), 그분의 죽음을 의인의 죽음으로 여겼던 것 같다(요한19,39).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객관적인 사실을 접하기 전에 믿고 싶은 것이 이미 자신 안에 정해졌다.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안에 자리 잡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것이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것이 하느님에게 온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것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가 없다면, 예수님의 강생도, 십자가 희생도, 세례도 모두 다 헛소리, 거짓말이 되어 버린다. 무죄한 자가 죄를 씻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종교적인 신념도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신념으로 무고한 사람과 자연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지 잘 안다. 예수님을 하느님, 구세주로 고백하는 이들의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하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순수성은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먼저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는지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분은 비폭력, 보편적 사랑 그리고 인내와 희생을 보여주셨다. 하느님은 그런 분이시다. 한 마디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 그 중에서도 그의 믿음과 사랑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 없는 행위는 희생이다. 피조물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신념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희생이다. 자신은 죽고 이웃은 살리는 희생이다. 그런 사람들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의 몸에서 하느님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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