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시기

[순교] 정약종과 함께

오마리아

​정약종의 가족과 정약종에게 신앙적으로 영향을 받은 순교자들을 소개합니다. 

 

18.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경기도 광주 마재에 있는 유명한 학자 집안에서 출생. 순교한 성 유조이는 그의 두 번째 부인, 정철상과 정하상, 정정혜는 그의 아들과 딸.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지 2년 후, 형에게서 교리를 배우면서 천주교 교리를 깊이 이해하게 됐으며, 세례 후에는 교리를 연구하고 가족을 가르치는 데 전심했다. 오랜동안의 교리 연구를 바탕으로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 2권을 완성했는데, 이 책은 주문모 신부의 인가를 얻어 교우들에게 널리 보급됐다. 주 신부는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를 조직한 뒤 정약종을 초대 회장에 임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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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정철상 가롤로

경기도 광주 마재 유명한 학자 집안에서 출생. 1801년에 순교한 정약종이 부친이고, 1839년에 순교한 유조이 성녀는 계모이며, 같은 해에 순교한 정하상 성인과 정정혜 성녀는 동생들이다.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워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교회 가르침에 따라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포천의 유명한 신자 홍교만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신유박해가 발생해 부친과 숙부들이 체포돼 의금부로 끌려가자, 그는 그들을 따라가 의금부 인근에 머물면서 옥바라지를 했다… 정철상은 최필제(베드로), 윤운혜(루치아) 등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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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조용삼 베드로

경기도 양근 태생으로 일찍 모친을 여의고 부친 슬하에서 자라났다. 집안이 가난한 데다 병약하고 용모도 볼품없어 서른 살이 되도록 혼례도 올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버지와 함께 여주에 사는 임희영의 집에서 살게 됐는데 이때 천주교에 대해 듣고는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을 스승으로 받들어 교리를 배웠다. 아직 예비신자였던 1800년 4월 포졸들에게 체포된 그는 혹독한 형벌에도 굴복하지 않았으나 포졸들이 아버지를 볼모로 삼고 모질게 매질하자 결국 배교하고 말았다. 그러나 관청에서 나오다가 이중배(마르티노)의 권면을 받고는 즉시 관청으로 들어가 다시 신앙을 고백. 옥중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영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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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황일광 시몬

백정의 아들. 세상의 멸시를 받으며 어렵게 살았으나 하느님께서는 놀랄 만한 지능과 열렬한 마음, 매우 명랑하고 솔직한 성격을 주셨다. 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동생 황차돌과 함께 고향을 떠나 멀리 경상도로 이주. 교우들은 그의 신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 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황일광은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약종이 살던 경기도 광주로 이주하여 황사영, 김한빈 등 여러 교우들과 친밀하게 교류. 그의 열심은 날로 더해져 모든 이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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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성인 검색은 성바오로딸수도회‘복자 124위’자료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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