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시기

[순교]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오마리아

놀라운 신앙으로 죽음을 불사한 용감한 순교자들을 소개합니다.

 

111. 김기량 펠릭스베드로

제주지역의 첫 순교자. 그는 배를 타고 육지를 드나들며 장사를 하던 소규모 무역상. 1857년 무역활동을 위해 항해하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한 달 이상 표류 끝에 중국 광동 해역에서 영국 배에 의해 구조된 그는 홍콩에 있는 파리 외방전교회에 인도된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조선인 신학생(이 바울리노)에게 교리를 배우고, 성령강림 대축일인 그해 5월 31일 루세이유 신부에게 세례(洗禮)를 받았다. 제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후 고향에 돌아와 전교활동을 펼친다. 그를 통해 1866년 무렵 제주에선 예비신자를 포함 40여 명이 천주교에 입교한다. 제주에 가톨릭교회 공동체가 형성되고 공식적으로 복음 선포와 전례 행위가 시작(1899년)되기 전의 일이었다. 김기량은 고종 3년 선교사 등 6000여 명이 희생된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체포되어 말할 수 없는 모진 박해를 받다가 가슴에 못을 박는 처형을 당했다. 그가 흘린 피는 우리 제주도의 신앙의 밑거름으로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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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김사집 프란치스코

충청도 덕산 양반 집안 출신. 과거 공부를 하다가 천주교 신앙을 접하고는 학문을 버리고 교리 실천에 노력. 타고난 슬기와 재능,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에 대한 희사와 애긍으로 복음 전파에 많이 기여. 또 교회 서적을 열심히 필사해 가난한 교우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 그는 옥중에서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내 “천주님과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에 의지해 교우답게 살아가는 데 힘쓰도록 하라. 다시는 나를 볼 생각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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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김시우 알렉시오

충청도 청양 양반 집안에서 출생. 착하고 어진 성품이었으나 오른쪽 몸이 불편해 결혼할 수가 없었고, 일하기가 어려워 가난하게 생활해야만 했다.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그는 열심히 신자 본분을 지키면서 누이에게 교리를 가르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우들에게 교리를 설명해 주거나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했다. 그러나 가난해서 교우들의 애긍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턱이 부서지는 혹독한 형벌을 받은 그는 음식을 먹을 수도, 구할 수도 없는 처지로 지내다가 2개월 만에 굶주림과 형벌의 상처로 옥사했다. 그의 나이 33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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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김종한 안드레아

충청도 면천 솔뫼 출신. 순교한 김진후의 아들. 성 김 데레사의 아버지이자 성 김대건 신부의 작은할아버지.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지 몇 년 후 맏형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 부친 김진후는 체포와 석방, 형벌과 유배를 번갈아 당하다가 옥사로 순교, 부친이 옥중에 있는 동안 형제들은 안전한 신앙생활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가족과 함께 경상도 영양 우련밭으로 가서 살면서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고 전교에도 힘썼다… 종한은 지도층 신자로 지목돼 제일 먼저 칼을 받고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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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김진후 비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증조부요, 1816년에 순교한 김종한(안드레아)의 부친. 50살쯤 됐을 때 이존창에게서 교리를 전해 들은 맏아들의 영향으로 천주교 신앙을 접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천주교 교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자식들의 꾸준한 노력에 점차 회심하게 됐고 마침내 관직을 버리면서까지 신앙생활에 열성과 모범을 보였다… 오랜 옥중 생활 끝에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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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박대식 빅토리노

그의 가정은 부유했으며 언제부터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부친(박만혁)과 형제들은(대붕, 대홍, 대식)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병인박해를 만나게 된다. 병인박해 때는 가족 모두가 피신하여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무진박해 때 박대식은 조카인 박수연과 함께 붙잡힌다… 박대식은 연일 배교를 강요당하며 고문을 받았다. 뼈가 부러지고 몸이 뒤틀렸다. 가족들이 면회 왔을 때 험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 웃옷으로 몸을 가렸다고 한다. 박대식은 1868년 10월 12일(음력 8월 27일) 조카 박수연과 함께 참수 치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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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성인 검색은 성바오로딸수도회 ‘복자 124위’ 자료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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