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연중 6주일) 행복과 사랑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예수님도 그런 우리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길을 제시하셨다. 매일 아프면 행복하기 어렵겠지만 매일 수고해도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마음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좋아서 입교하고 부처님이 좋아서 절에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입교한다. 불자들도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잘 모르지만 현세적인 축복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을 거다.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들에게 교회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라 살라고 가르친다. 그분은 하느님 때문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진리를 전하고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도 십자가 위에 저렇게 사형수로 삶을 마감하신 분이다. 그런 분을 따르면 정말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할지 의심할만한도 한데 그런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아마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그렇게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도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신다고 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맞는 말이다.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은 위인전에도 당신 이름을 올리지 못하셨을 거다.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도 없고 교회도 나도 이곳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입교하는 사람들의 그 바람과는 다르게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늘 마음이 평화롭고 하는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예수님을 더 알고 더 가깝게 따를수록 마음을 다스리며 어떤 것을 선택해야하는 일이 숙제처럼 주어진다. 신앙은 윤리적 판단과 실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선택과 실천이 사회법과 통념을 거스르고 더 나아가 크고 작은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숙제를 받은 사람의 마음이 평화롭기 어렵다.
예수님을 따라 세상에서 바보가 된 이들이 나보다 똑똑하지 못해서 그렇게 살았을 리가 없다. 그분들이 보았던 것과 그분들이 누렸던 신적인 행복이 궁금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렸다지만 나 자신을 빼놓고는 지금까지 무엇 하나 부족하다고 느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다. 아마 그것이 사랑일거다. 사랑은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사는 거다. 그것에 대한 보답이 없으면 좋고 가끔 희생을 하게 된다면 더 좋다. 예수님처럼 살고 또 하느님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행복은 완성된다. 지금도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지만 예수님처럼 완전히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는 거룩한 욕망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예수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참된 행복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그 행복의 길을 선택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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