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요구 안에 담긴 선물
주일미사 참례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고백성사 해야 하고, 아침저녁기도 바쳐야 하고, 밥 먹기 전과 그 후에도 기도해야 하고, 주일헌금과 교무금도 내야하고, 본당행사에도 참여해야 하고 …, 성당 문을 열면 수많은 ‘해야 한다.’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과연 이 모든 것을 해야만 하나? 그래야 하느님의 사랑을 가까스로 얻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세례를 무르고 세상 속에서 정의롭게 그리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예수님은 오직 한 가지, 믿음만 요구하셨다. 그분은 정말 끝없는 자비를 베푸셨다. 그것이 다 아버지 하느님께 받은 것이고,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려고 세상에 왔다고 하셨다. 하느님은 죄를 묻지 않으시고 언제나 용서하시니 무조건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고 온 몸으로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보다 하느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받는다는 것이 믿기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런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던지시며 끝내 그를 울리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16.17)” 누가 들어도 이것은 베드로가 세 번 당신을 배반했던 것을 떠올리게 되는 장면이다. 하느님의 자비는 어디에 있지? 이렇게 아파야 한다면 용서받는다고 해도 못 돌아갈 것 같다.
베드로는 목소리만 컸지 마음은 여린 사람이었다. 성급하지만 순수한 사람이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도 자기 자신을 잘 몰랐다. 자신이 그렇게 겁이 많은 줄, 그렇게 어리석은 줄 몰랐다. 그런데 주님은 다 알고 계셨다. 베드로도 결국 그것을 고백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17절).” 이는 ‘스승님께서 끌려가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세 번이나 스승님을 모른다고 했던 것, 그러나 그것이 제 본심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앞으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없다는 것, 그런데도 여전히 주님을 따라 살고 싶다는 것을 굳이 일일이 다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라는 고백으로 들린다. 그의 이 눈물의 고백에서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낀다. 그것은 자비이고 하느님의 선물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셨고 그는 대답해야 했는데, 주님의 그 요구 안에는 그런 선물이 담겨 있었다.
Alberione, alberione, Catholic, catholic, content, contents, Contents, contents.pauline.or.kr, gospel, Gospel, FSP, fsp, pauline, Pauline, pauline contents, 카톨릭, 가톨릭, 교리, 교리교재, 꿈나무, 바오로가족, 바오로딸, 바오로딸 컨텐츠, 바오로딸 콘텐츠, 바오로딸컨텐츠, 바오로딸콘텐츠,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성바오로딸, 성바오로딸수도회, 성 바오로딸 수도회, 성바오로딸 수도회, 주일학교, 콘텐츠 바오로딸, 콘텐츠바오로딸, 알베리오네, 야고보 알베리오네, 이종훈, 이종훈 신부, 이종훈 마카리오 신부님, 이종훈 마가리오 신부님, 마카리오 신부님, 마가리오신부님, 마카리오신부님, 마가리오 신부님, 마가리오, 마카리오, rio, Rio, 구속주회,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cssr, 강론, 강론말씀, 복음강론, 강론 말씀, 복음묵상, 복음 묵상, 복음 강론, 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영원한기쁨, 영원한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