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참된 예배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알 수 없는 하느님을 알 수 있게 되어 참으로 좋지만, 보는 것만 보고 듣는 것만 듣는 인간적인 한계 때문에 하느님을 자기 방식대로만 알게 된 것은 아쉽다. 제자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예수님은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우리에게 이롭다고 말씀하셨다(요한 16,7). 당신이 인간을 떠나야 영으로 우리 각자 안에 자리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느님의 계약궤가 있고 또 백성들이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다. 지금은 그 궤가 없어졌고 성전도 파괴됐다. 성전 휘장도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마태 27,51). 하느님이 사라지거나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 곁이 아닌 우리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오셨다. 사람이 되셨을 때보다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영이 계시는 그분의 성전이 되었다(1코린 3,16).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행위는 종교예식이 아니라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느님을 대하는 당연한 태도이다. 절대자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는 인간의 모습은 자연의 그 어떤 모습보다 아름답다. 사람은 하느님을 잊어버리면 아주 빨리 폭력적이고 추하게 변해버려 짐승보다 못하게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몸이 하느님의 성전임을 알기 때문에 하느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내 몸이 하느님의 말씀과 계약이 담겨 있고 하느님을 예배하는 성전이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 4,24).” 참된 예배의 모범은 예수님의 봉헌이다.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참된 예배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이웃을 위해 헌신한 예수님의 삶이다. 그분의 몸이 곧 성전이었다(요한 2,21). 우리의 예배가 인류를 위한 거창한 희생일 필요 없다. 이웃에게 허리 굽혀 봉사하는 모습은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인간의 모습과 아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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