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 나해 11월 2일(위령의 날) 희망과 기쁨(+MP3)

나해 11월 2일(위령의 날) 희망과 기쁨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이제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별 의미 없는 육신 생명 연장은 모두에게 불필요한 고통이다. 그냥 조용히 잘 죽게 내버려두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평소에 준비를 잘한다. 그 준비는 긴장 속이 아니라 희망 속에서 이루어진다. 등불에 기름까지 준비하고 기다리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마태 25, 4) 참 좋으신 주님을 얼굴을 맞대고 보는 날을( 1코린 13, 12) 기대하고 기다린다. 설레며 그날을 준비한다면 정말 좋겠다.

거기에 시신 기증을 할 것인가 장기기증을 할 것인가 고민한다. 의대생들이 시신을 함부로 다룬다는 소문이 있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해도 그건 그들의 잘못이지 내 죄가 아니니 내가 알 바 아니다. 나는 좋은 마음으로 육체를 선물로 주었으면 그만이다. 장기기증도 그런 차원에서 마지막 이웃사랑이 될 것 같긴 한데, 이미 쓸 만한 장기가 없을 거다.

마지막으로, 부고만 보내고 조문을 받지 말며 시신은 그 즉시 보내고 가능한 한 빨리 장례미사를 봉헌해서 내 지상 삶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해주기를 바란다. 이런 계획을 두고 남겨진 이들에게 애도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반대하는 형제들이 있다. 수긍하지만 나의 죽음은 애도보다는 축하와 기쁨의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아무런 바람이나 미련도 없고 거기에 죄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니 말이다. 게다가 애도할 사람도 없을 것이고 내가 여기서 기쁘게 살았다면 그 기쁨이 죽음의 단절을 쉽게 넘어가게 해줄 거다.

세례성사의 은총으로 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공짜로 얻었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어 그분과 함께 부활한다. 하느님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결합하셨다. 그러니 나중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주님과 하나가 되어 살기를 바란다. 여전히 잘 안 되지만 그러려고 노력한다. 예수님 말씀대로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날이 언제일지 궁금해서 초조해하지 않는다. 죽음은 내 삶의 일부고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본래부터 그렇게 되기로 되어 있는데 잊고 지내니 무서워하고 놀라는 거다. 나의 관심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다. 활기차고 기쁘게 산다. 죄인을 위해서 외아들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이 내 아버지고 어머니다. 그리고 그 외아드님은 큰형이고 친구다. 지금은 기도 중에 어렴풋이 희미하게 그리고 가장 작은 이들을 돕고 희생하는 기쁨 중에 잠시 그분을 뵙고 죽으면 직접 뵌다. 그렇게 나의 고단한 순례는 끝나고 거기서 나는 좋은 이들과 온전히 쉰다.

예수님, 사치스럽지만 때가 되면 알려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런데 주님도 모르신다면 매일 그날이 오늘인 것처럼 충실히 살게 해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제와 제가 죽을 때에 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