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11월 6일(첫 토요일 성모신심) 하느님 가족(+MP3)

나해 11월 6일(첫 토요일 성모신심) 하느님 가족


가정과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 아빠들은 섭섭하겠지만 자신에게도 엄마가 필요함을 잘 알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가정뿐만 아니라 어느 공동체든지 엄마가 필요하다. 겉으로는 아빠가 가장이지만 속으로는 엄마가 그 중심이다.

엄마는 높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가족 구성원의 종이다. 생활하는데 실질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엄마에게 요구하고 때로는 직장생활의 고민까지 털어놓는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천부적으로 그런 능력이 더 많이 주어진 것인지 엄마가 되면서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헌신하고 돌보는 그 능력은 거의 신적(神的)이다.

하느님은 당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서 우주 만물을 살리고 돌보신다. 모성(母性)도 그와 비슷하다. 요란스럽거나 드러나지 않게 사람을 살게 한다. 엄마는 주인에게 헌신하는 종과 같다. 그래서 엄마는 모두에게 살갑게 가깝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우리에게 낳아주신 하느님의 어머니다. 그분은 창조주와 피조물, 재판관과 죄인의 관계에서 우리를 하느님과 가족이 되게 해주셨다. 예수님을 젖을 먹이고 키우셨듯이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가 하느님과 살갑게 친해지게 하신다.

성모님이 귀족 부인이셨다면 그리고 아들 예수님이 학자거나 깐깐한 율법 교사셨다면 우리 신앙생활은 참 건조하고 짐스러웠을 거다. 아니 그리스도교는 태동조차 못 했을 거다. 성모님은 죽음을 각오한 잉태, 아들살해위협과 이민생활, 아들 하느님이 죄인으로 수난을 겪고 죽는 것까지 다 지켜보셨다. 그리고 부활한 아드님을 만나셨고 엄마 모습 그대로 하늘로 오르셨다. 그러니 성모님에게 말 못할 고민이나 부끄러워 청하지 못할 청원이 없다. 아기에게는 엄마 품이 하늘나라다. ‘엄마~’ 하고 부르면 모든 일이 해결됐던 걸 기억한다. 예수님도 이걸 아셔서 당신보다는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더 가까울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다. 그러니까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성모님께 맡기셨다. “이 사람이 어머니 아들입니다(요한 19, 26).” 성모님은 다른 엄마들보다 더 아들에게 집중하셨을 거다, 아주 특별한 아들이었으니까. 당신 삶의 전부였을 거다. 그 집중이 곧 하느님께 대한 신뢰고 충실이었다. 성모님을 ‘엄마~’라고 부르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과 가족처럼 친해진다.

예수님, 저희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다. 다른 어떤 기적보다도 주님 어머니를 저희가 엄마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선물입니다. 주님은 저희를 아주 잘 아십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를 이렇게 부르며 청하면 저희는 하느님과 더욱 가까워집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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