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11월 7일(연중 32주일, 평신도주일) 순수해지는 과정
교회의 전례력에는 축일과 대축일이 있다. 이는 매일이 축일이고 대축일인데 그걸 사람들이 잊어버릴까봐 가끔씩 그런 날들을 끼워 넣은 거란다. 우스갯소리다. 오늘이 평신도주일인 것도 그런 의미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고 그 대부분이 평신도라는 걸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평신도는 예수님이 선택하신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도인이다. 교우들은 스스로 그리스도교를 선택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먼저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아니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을 알지 못했을 거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 44).”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없다(요한 6, 65).
하느님은 부르시고 우리는 응답한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서로 사랑함이 우리의 응답이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구원의 길이다. 우리의 사랑은 계속 넓어지고 깊어지고 순수해져야 한다. 성직자들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말 그대로 하느님이 오늘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사람은 행복하다(1테살 2, 13). 하지만 성직자도 구원 받아야 하는 죄인이니까 그들의 행동을 따라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전하는 말이 더 큰 힘을 지니게 거룩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모범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예수님처럼 순수하게 하느님만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성모님과 성인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나는 과연 완전히 순수하게 하느님만을 사랑할 수 있나? 현재까지 나의 대답은 그럴 수 없음이다. 내 무의식 안에 담겨 있는 거짓 행복프로그램을 삭제하지 않는 한 나의 선행과 사랑은 완전히 순수할 수 없다. 그걸 삭제하려면 아마 실제로 죽어야 할 거다.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는 선행 안에도 기쁨과 보람이라는 보답이 스며있다. 의로운 분노는 오직 하느님만 하실 수 있고, 완전한 하느님 사랑은 예수님만 하셨다. 그렇다면 순수할 수 없으니 나의 선행 봉사 희생은 위선인가? 이론적으로 엄격히 말하자면 그렇다. 그래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그걸 통해서 내가 순수하지 않다는 것과 바로 그런 나를 하느님이 목숨 바쳐 사랑하심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적인 순례는 지향을 순수하게 만들고, 하느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사랑해가는 긴 과정이다.
오래 전 비유 이야기 모음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세상 모든 것을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에 ‘당신의 구원’이라는 상품이 있었다. 그 가격은 ‘당신의 안전’이었다. 듣기 싫겠지만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살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 기억, 능력, 친구, 때로는 근거 없는 행운까지 믿는다. 신앙과 실제 삶이 분리되어 있다. 분열되어 있다.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신다. 돌아오라고, 당신께로 오라고 해서 영원한 당신과 하나가 되자고 부르신다. 그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성전 헌금함에 넣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당신 전 생애를 남김없이 아버지 하느님께 봉헌하셨다. 하느님이 당신께 바라시는 그대로 하셨다. 당신은 피하고 싶었지만, 하느님이 원하시니 그렇게 하셨다. 이게 우리가 추구하는 사랑이다. 우리의 사랑은 순수해져야 한다. 조건 있는 사랑, 보답을 바라는 선행과 희생인 줄 알면서도 그것들을 계속하는 이유다. 내가 하느님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음을 알았으니 이제 하느님을 더 믿고 더 많이 사랑한다.
예수님, 주님을 따라 영원하신 아버지 하느님께로 갑니다. 오늘도 마음을 열어드리오니 주님의 영을 새롭게 보내주시어 어두운 제 무의식과 죄스러움을 비추어주십시오. 놀라고 당황해야 할 일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마다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더욱 신뢰하게 도와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가 도와주시지 않으면 저는 한 발짝도 올바르게 내디딜 수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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