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넘어야 할 선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은 저 죄인들과 같지 않다고 여겼다. 그들의 철저한 율법준수와 금욕적인 생활이 그것을 확신하게 했던 것 같다. 반면 예수님은 그들이 분리시킨 죄인들과 한 자리에서 어울리셨다.
바리사이들은 죄인들을 분리시켰고 예수님은 그들을 끌어 안으셨다. 바리사이들에게 죄인은 자신들을 오염시킬 수 있어서 분리의 대상이었지만 하느님께는 잃어버린 혹은 빼앗긴 당신 소유였다. 잃어버렸으니 당연히 되찾아야 한다. 그래서 죄인들과 접촉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식사가 예수님께는 아주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판단과 단죄는 쉽다. 인내와 포용은 정말 어렵다. 단죄는 너무 쉬워서 하느님도 저렇게 십자가에 매달 수 있었고, 동시에 포용은 너무 어려워 하느님이 저렇게까지 피를 흘리셔야했나 보다. 단죄는 더러운 것과 분리되어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잠시고 그 나머지 시간들은 비좁은 방에 갇혀 지낸다. 포용은 자신 안에 그어져 있는 넘어가면 안 되는 선을 넘어가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것은 잠시고 그 이후 더 자유롭고 평온하다.
인내와 포용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단죄의 대상임을 잊지 않으면 수월하다. 사실 나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다. 그를 용서하고 인내하고 포용하면 내가 용서받고 포용되었음을 알게 된다. 내 안에 그어져 있는 그 선은 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고 나를 가두고 있는 울타리다. 그러니 부수고 넘어가야 한다.
예수님, 모든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접촉하고 그들은 흔들렸습니다. 분리가 아니라 포용이 하느님과 더 가깝습니다. 주님이 피를 흘려 되찾으신 소유를 제 멋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하지 않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마음의 벽을 만들어 저를 좁은 곳에 가두는 판단과 단죄를 멀리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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