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단식
평소에는 밥 생각이 없거나 건강을 위해서 끼니를 거르기도 하는데 단식하는 날은 괜히 더 먹고 싶어진다. 끼니 한 번 거른다고 건강을 해치거나 단식하는 날 조금 먹는다고 큰 죄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한 시기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행하는 단식은 단지 끼니를 거르거나 의지력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말씀은 모두 단식의 의미를 가르친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 58,6-7)” 하느님은 세상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있게 풍족하게 세상을 만드셨는데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느님은 악인에게도 자비를 베푸시는데 마땅히 누려야 할 천부적인 인권을 빼앗긴 사람들이 있다. 단식은 바로 그런 이웃들을 잊지 않고 그들의 굶주림과 아픔을 느끼며 그것들을 나의 고통이 되게 하여 나를 돕듯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것이다.
내가 배부르면 남의 배고픔을 알지 못한다. 내가 좋은 대우를 받으면 기본적인 인권마저 빼앗긴 이들의 억울함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면 가장 작은이들과 안에 계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을 잊은 채 착하게 잘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면 그분은 나를 알지 못한다고 하시며 문을 쾅하고 닫아버리실 것이다(마태 25장).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인간은 아픔과 고통을 싫어하는데 남의 그것들을 끌어안는 일이 저절로 일어날 리가 없다. 의지적으로 그리고 강제적으로 이웃의 어려움과 고통에 눈을 돌리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건강, 의지력, 금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이 잔치가 되게 해주시는 예수님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단식한다. 내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는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고 억울해도 외칠 수 없는 이웃들과 그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떠올리고 몸은 비록 여기 있어도 마음은 그들과 함께 있게 할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오면 주저하지 않고 그들을 돕게 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가장 작은이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하셨으니 기도 중에 말씀하시던 주님을 그들 가운데서 실제로 만나고 섬기게 하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기도와 단식과 자선이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고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하는 도구가 되게 도와주소서. 아멘.
Alberione, alberione, Catholic, catholic, content, contents, Contents, contents.pauline.or.kr, gospel, Gospel, FSP, fsp, pauline, Pauline, pauline contents, 카톨릭, 가톨릭, 교리, 교리교재, 꿈나무, 바오로가족, 바오로딸, 바오로딸 컨텐츠, 바오로딸 콘텐츠, 바오로딸컨텐츠, 바오로딸콘텐츠,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성바오로딸, 성바오로딸수도회, 성 바오로딸 수도회, 성바오로딸 수도회, 주일학교, 콘텐츠 바오로딸, 콘텐츠바오로딸, 알베리오네, 야고보 알베리오네, 이종훈, 이종훈 신부, 이종훈 마카리오 신부님, 이종훈 마가리오 신부님, 마카리오 신부님, 마가리오신부님, 마카리오신부님, 마가리오 신부님, 마가리오, 마카리오, rio, Rio, 구속주회,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cssr, 강론, 강론말씀, 복음강론, 강론 말씀, 복음묵상, 복음 묵상, 복음 강론, 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영원한기쁨, 영원한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