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벙어리의 기도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한다. 누가, 무엇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나? 이것저것, 이 사람 저 사람 등이 그렇다고 고자질 하고 고발하고 싶지만 말할 용기가 없다. 그런데 그들은 왜 나에게 자꾸 스트레스를 줄까? 정말 그럴까? 아니면 혹시 그들이 주지 않은 것을 내가 받았다고 우기는 것은 아닐까? 그래, 그런 것 같다. 내가 남에게 그러고 싶지 않듯이 그들도 일부러 그랬을 것 같지 않다. 그러니 내가 그들이 주는 그것이 스트레스라고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화나고, 복수심이 생기고, 나쁜 마음이 드는 것이 죄라고 나무란다면 억울하다.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 내 안에서 그런 것들이 일어났으니 무어라고 변명하지도 못한다. 억울한데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어 답답하다. 벙어리의 냉가슴이다.
이기적인 인간이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자신만 괴롭힌다. 거꾸러지고 물속 불속으로 뛰어든다. 게다가 이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것 같다(마르 9,21-22). 누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어 보이는 이 답답한 굴레에서 불쌍한 나를 빼내주었으면 좋겠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마르 9,25).’” 말을 못하는 이유가 듣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군중이 저렇게 떼를 지어 나에게 달려드니 참된 말씀을 들을 수 없었겠지. 하느님은 내가 조용해져야 비로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다. 언제나 말씀하고 계신데 내가 듣지 못한다. 군중들의 와글와글 왁작왁작 거리는 소음 속에서 산들바람 같은 하느님의 목소리(1열왕 19,12)를 듣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도 어쩌나 그 말씀을 들으려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내 믿음이 부족하니 주님께 도와달라고 청하고(마르 9,24),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의 그 이름을 기억하고, 또 모르는 어떤 이를 위해 기도하는 어느 착한 교우의 기도의 힘까지 빌려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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