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성녀 마르타) 다 아는데 가지 않는 길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 이렇게 두꺼운 성경의 요약이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하느님을 믿으라고.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하느님은 살아 계시다고 믿으라는 호소이다. 그분을 볼 수 있고 그분의 뜻을 알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면 이렇게 많은 말과 이야기들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먼 곳에 계셨지만 사랑하는 라자로가 죽은 것을 아셨다(요한 11,11). 사람들에게는 그가 죽었지만 그분에게는 잠든 것이었다. 마치 그가 숨을 멈출 때까지 기다리셨던 것처럼 보인다. 그를 되살려내서 사람들이 당신을 믿게 하시려 했던 것 같다.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었겠지만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큰 도전은 없었을 것이다. 병이 낫고 악령이 쫓겨나는 것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지만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사람이 되살아남은 그 조차도 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느님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계신다. 죄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하느님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그런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음식점 운영을 다루는 한 TV프로에서 그 주인장은 ‘자신이 고단하면 손님 입은 즐겁고 내가 편하면 손님 입이 불쾌해진다.’고 말했다. 당연하지만 명언이다. 사랑은 고단하지만 그 고단함 속에는 충만함이 있다. 사랑이 아닌 다른 마음이 있다면 그 고단함은 불평과 미움의 씨앗이 되어버린다. 사랑은 그 자체로 행복하다. 순수한 사랑은 보답은 물론이고 그 수고에 대한 보람도 바라지 않는다. 혹시 있다면 사랑하는 이가 즐겁고 행복함일 수 있겠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이 또한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으라는 호소이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보고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으니 그분이 내 앞에 나타나기를 바람은 처음부터 그분을 따를 마음이 없는 거다. 하느님은 이제는 다시 사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시지 않을 거다. 그분은 이미 다 보여주셨고 어디 사시는 지도 알려주셨다. 그분은 사랑이시고 그분은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는 선행 속에 사신다. 그분은 이 세상에 계시면서도 안 계시는 분이고, 그분이 사시는 집은 세상으로 이미 내려와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곳이다. 오직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만이 그분을 뵐 수 있고 그분이 사시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느님, 당신이 숨어계신 곳을 다 알려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공개된 비밀을 들었지만 당신을 찾으러 그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적으니 그 오솔길은 언제나 한적합니다. 다 알지만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그 길을 오늘도 조용히 한가롭게 걸어가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숨어계신 하느님을 찾는 모든 이들을 이끌어주셨으니 오늘 저의 발을 주님 계신 곳으로 인도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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