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분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얼굴을 맞대고 보면 죽는다고 했지만, 예외인 사람들이 있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두고 하느님과 흥정을 했고(창세 18,20-32), 모세는 특별한 장소에서 친구처럼 친근하게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과 대화했다(탈출 33,11). 그리고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빠라고 불렀다.
하느님을 볼 수도 알 수도 없다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사람들은 하느님의 동산에서 알몸으로 그분과 함께 살았다. 그들에게 하느님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분이셨다. 그런데 그들의 잘못으로 그곳을 잃어버렸고 그분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 이후 그것이 전해지면서 하느님을 볼 수도 알 수도 없음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돼버렸다. 그리고 그분은 신비스러움을 넘어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처음부터 그게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는 처음의 그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 낙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곳이 아니라 찾아가야할 인류의 최종 목적지라고 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그곳이 잃어버린 곳이든, 최종목적지든 우리는 그 낙원으로 하느님의 집으로 가야 한다. 하느님과 친해져서 자연스러운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특별한 몇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 하느님은 이 세상사람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신다. 그분의 집도 무지 넓다고 들었다(요한 14,2). 우리가 당신께 돌아오기를 얼마나 바라시면 아들까지 내어주기까지 하시면서 그 마음을 전하셨을까? 십자가에 달려 있는 저분의 비참한 모습은 하느님의 경고가 아니라 우리가 당신께 올 수만 있다면 저렇게까지도 하신다는 하느님의 마음이다.
예수님, 주님께 하느님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분이셨습니다. 아니 아빠셨습니다. 그 친밀감을 저에게도 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예수님이 왜 당신을 저희 어머니가 되게 하셨고, 또 당신이 왜 이런 길고 어색한 이름을 가지게 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뭐 그리 복잡하게 하느님께 가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아무리 기도하고 결심해도 여전히 하느님은 불편하고 두려운 분으로 느끼니 어쩌겠습니까? 제 죄를 대신 보속하실 정도로 저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주소서. 아멘.
Alberione, alberione, Catholic, catholic, content, contents, Contents, contents.pauline.or.kr, gospel, Gospel, FSP, fsp, pauline, Pauline, pauline contents, 카톨릭, 가톨릭, 교리, 교리교재, 꿈나무, 바오로가족, 바오로딸, 바오로딸 컨텐츠, 바오로딸 콘텐츠, 바오로딸컨텐츠, 바오로딸콘텐츠,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성바오로딸, 성바오로딸수도회, 성 바오로딸 수도회, 성바오로딸 수도회, 주일학교, 콘텐츠 바오로딸, 콘텐츠바오로딸, 알베리오네, 야고보 알베리오네, 이종훈, 이종훈 신부, 이종훈 마카리오 신부님, 이종훈 마가리오 신부님, 마카리오 신부님, 마가리오신부님, 마카리오신부님, 마가리오 신부님, 마가리오, 마카리오, rio, Rio, 구속주회,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cssr, 강론, 강론말씀, 복음강론, 강론 말씀, 복음묵상, 복음 묵상, 복음 강론, 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영원한기쁨, 영원한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