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교회의 어머니) 어머니
먼지만 풀풀 날리게 메말랐던 대지 위에 며칠 흠뻑 비가 내렸다. 과실나무와 꽃나무 그리고 온갖 풀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제 며칠 후면 그 노랫가락에 맞춰 숲의 초록은 더욱 짙어질 것이다.
그들이 비를 맞으며 흥겹게 노래하고 초록빛을 뿜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그들이 땅 속에 뿌리를 깊이 박고 있기 때문이다. 바위는 그 묵직함과 든든함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지만 물을 그대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그 위에서는 생명이 자랄 수 없다. 반대로 흙은 그 물을 모두 흡수해서 자신에게 뿌리를 박고 있는 식물을 살게 한다.
하느님은 생명의 원천이시다. 그분은 비처럼 온 땅위 모든 것에게 은총을 내려주신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하지만 모든 것이 그 은총을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돌같이 딱딱하고 차가운 마음은 그 물을 그냥 흘려보내고 흙은 물을 모두 흡수한다. 돌 위엔 아무 것도 없지만 흙 위에는 생명이 자란다.
하느님을 찾아가는 녹록치 않은 인생이라는 순례 길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어머니의 마음, 모성(母性)이다. 여자는 아기를 잉태하여 낳아 어머니가 된다. 아니 그 때부터 어머니가 되어 간다. 자녀와 가족을 위해서 점점 자신을 잊어버린다. 세상은 그러면 안 된다고 외치지만 세상위에 우뚝 선 바위가 되어 뭘 하겠나? 풀포기 하나 키워내지 못하고 언젠가는 그 자리에서 치워지거나 부서져버릴 텐데. 그보다는 흙이 되어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있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 새로운 인류가 탄생하는 그 자리에 성모님이 계셨다. 뜬금없이 그 자리에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님과 함께 계셨는데, 제자들이 없어져서 그분의 모습이 드러났을 뿐이다. 예수님이 어머니를 얼마나 신뢰했으면 당신의 제자들을 그리고 교회를 그분 손에 맡기셨을까? 복음서에는 성모님 이야기가 몇 줄 나오지 않지만, 종이가 있어야 글자를 볼 수 있고 흙이 있어야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성모님은 예수님의 인류 구원이야기 안에 그렇게 계신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분이다. 그래서일까? 그분은 세상의 좋은 이름은 모두 가지셨다. 하느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인류의 어머니,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또 그분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이다. 그분은 나를 영원히 도와주는 엄마다. 땅이 비를 맞아들여 생명을 키우듯이 그분은 온 세상에 내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전달해주셔서 우리가 구원의 길을 걷게 하신다.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어머니를 저희의 어머니로 내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그분은 저희가 예수님을 오늘 여기서도 만나게 해주시고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알려주십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가 그런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셨으니 그 이름을 신뢰하며 제게 필요한 모든 것과 소망을 어머니께 청하오니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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