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사랑의 법
어느 본당 제의실에 제대초를 켜는 순서를 알려주는 그림이 붙어 있다. 복사 봉사자들을 위한 것이겠지. 하지만 숨이 막힌다. 초 켜는 순서가 구원과 무슨 관계가 있길래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한국교회가 로마보다 더 로마답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교우들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제대초 규정은 제대와 전례의 의미를 알려주려고 만들어졌을 텐데.
공동체에는 규칙이 교회에는 교회법이 나라에는 국법이 있다. 물론 지키자고 만든 규범들이고 그것들은 평화, 상생과 공존 등 공동선을 지향하고 교회법은 구원을 지향한다. 교회법 맨 마지막 조항은 이렇게 되어있다. ‘제 1752 조 (전임의 경우에도 제1747조의 규정이 적용되어야 하고,) 아울러 교회법적 공평을 지키며 영혼들의 구원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것이 교회에서 항상 최상의 법이어야 한다.’
제대초를 켜는 순서가 틀렸다고 아니 규정해놓은 것과 다르게 했다고 하느님께 심판받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한 소리 들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것 정해놓지 않았다면 봉사자도 책임자도 아무 불편이 없었을 것을. 그러고 보면 교회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도 그런 규정들이 많다. 그 규정의 본질은 사라지고 규정만 남아 심판과 책벌만 남은 것들 말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줄 알았지만 정반대로 완성하러 오셨다. 그분은 율법의 제정자이시고 하느님이시니 당신이 정한 법을 스스로 어기실 수 없었다. 모세를 통해 돌에 새겨주신 법들이 하느님 사랑이 아니라 이웃을 단죄하자 하느님은 그 법을 치우시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 깊고 선명하게 그 법을 새겨놓으셨다. 그분 앞에서 모든 이들은 죄를 용서받는다. 그게 그 법의 완성이었다. 우리는 완성되고 완전한 법, 하느님 사랑의 법을 따른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린다(2코린 3,6). 세상의 어떤 법도 철학도 신학도 하느님의 죽음을 넘어설 수 없거니와 그것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예수님, 저희는 수많은 법과 규정들 안에서 살지만 주님은 오직 한 가지 법만 지키고 사셨습니다. 사랑의 법이고 하느님의 법이었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쉽고 편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비난하는 마음을 치우고 정의로운 체하며 이웃을 함부로 단죄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예수님의 가난한 마음을 배우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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