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삼위일체 대축일) 동행
여행은 목적지보다는 동행자가 더 중요하다. 동행자와 관계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곳을 간다고 해도 그 여행은 괴로움이다. 반대로 동행자가 좋으면 어디를 가든, 아니 어쩌면 목적지에 갈 수 없게 돼도 괜찮다. 그와 함께 한 시간이 좋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역시 남는 건 사람이고 관계이다.
우리 하느님은 세 위격이 하나이신 분이다. 이 축일은 삼위가 하나가 되는 원리가 아니라 삼위가 하나가 되는 완전한 사랑을 경축하는 날이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부어졌고 그 사랑 속에서 살아가다가 마침내 그 완전한 사랑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 사랑은 완전한 내어줌이다. 성부는 성자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셨고, 성자는 이 땅에서 오직 성부의 뜻에 따라서만 사셨으며, 두 분의 지독한 사랑에서 나오는 성령은 우리를 그 사랑으로 이끄신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짧지 않은 영적 여행길을 동반해주신다.
동양에서는 우주가 인간 안에 들어와 있어서 소우주라고 부른다. 그렇게 거대한 우주들이 모여사니 그 삶이 녹록치 않음은 당연하다. 함께 잘 사는 길은 오직 서로 사랑함뿐이고 그 실천원리는 내어줌이다. 그에게 나를 맞춘다. 이해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며 스스로 그의 종이 되어 그에게 나를 넘겨준다. 이렇게 사는 게 말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잘 안다. 그런 가장 큰 이유는 나를 고집하기 때문일 거다. 그 고집을 꺾지 못한 사람은 고립되고 그런 삶의 끝은 늘 좋지 않다. 우리는 함께 살고 서로 사랑해야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우주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데 그걸 어떻게 혼자 짊어지겠는가? 같이 짊어지든가 아니면 내어 주어 덜어내든가 해야 한다.
오늘 아침 안개는 유난히 짙다. 그래서인지 그 안에서 짝을 찾고 화답하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더 선명하고 청아하게 들린다. 지금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함께 살고 그 사랑으로 가는 중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그 길이 꽃길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이미 예수님이 예고 하셨고 성인들이 그랬고 굳이 그런 것들이 아니어도 나의 경험만으로도 안다. 하지만 우리에겐 믿음이 있다.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형제요 친구가 되었으니 그분의 능력도 나누어 받았다. 그 능력은 죽어도 되살아나는 힘이다. 역사는 죽도록 사랑하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렇게 사랑하고 살았던 이들이 우리 기억과 마음속에 남아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영원하신 하느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영원하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세 분이 하나가 되는 완전한 사랑의 불로 이기심과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의 감옥철창살을 녹여주소서. 그리하여 저도 예수님처럼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되게 해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사랑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에 동반자가 되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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