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9월 23일(성 비오 사제 기념일) 하느님을 보는 렌즈(+MP3)

나해 9월 23일(성 비오 사제 기념일) 하느님을 보는 렌즈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다. 역사서가 전하는 그의 사람 됨됨이와 복음서가 전하는 대로라면 그 바람은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것 같다. 정말 기적을 일으키는지 그리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지 보고 싶었던 거다.

그는 바람대로 예수님을 만났지만 매우 실망했을 거다. 기적을 일으키거나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닮았기를 기대했겠지만, 예수님에게서 그런 것들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그대로였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만한 모습도 없었다(이사 53 ,2).” 그때 예수님은 그저 권력자 앞에 끌려 온 한 죄인이었다. 세례자 요한에게 했던 것처럼 말 한마디로 없애버릴 수 있는 보통 한 사람이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꾸짖고 말 한마디로 병을 치료하고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시던 카리스마 넘치는 예수님의 그 당당한 모습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 같았다(이사 53, 7). 그분은 한없이 작아지셨고, 인간의 부정한 법정과 불의한 선고를 순순히 다 받아들이셨다. 그러기로 되어 있고 그럴 줄 미리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헤로데는 예수님에게서 자기가 원하던 신기한 것을 못 보았다. 빌라도도 최고 의회 의원들도 그분이 십자가형을 받아야 할 만한 죄목을 못 찾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사형시켰다. 그러니 십자가형은 사람이 아니라 그분을 보내신 하느님이 원하신 것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님이 받으신 십자가형은 인간의 교만 부정 불의 죄악의 총체적 상징이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셨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것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진짜 모습이다. 예수님은 십자가형이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돌아가셨을 거다. 그래도 그분은 되살아나셨을까? 그것도 주님의 부활일까?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기적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죄악이 인간을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는 창조주 하느님의 선언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기 때문에 넘어져도 용서를 청하고 확신하고 다시 일어나 주님 뒤를 따라갈 수 있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느님을 볼 수 있다.

예수님, 십자가가 없으면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 아닙니다. 주님은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셨지만 저는 저의 약점 상처 저게 주어진 소임을 짊어집니다. 그리고 주님 뒤를 따라갑니다. 제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제 마음대로 하고 싶고, 헛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몸과 마음이 지쳐서 십자가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보호해주시고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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