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10월 1일(소화小花 데레사 성인 기념일) 부끄러움
부끄럽다. 실수하고 잘못하고 죄를 지어서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한결같은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 때문에 더 부끄럽다. 그 부끄러움은 고통에 가깝다. 뉘우치고 결심한 대로 못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내 죄를 짊어지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래 내가 저지른 것이니 내가 거두고 짊어져야 할 것이지만 주님이 대신 지신다.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도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불평들을 늘어놓지만 조용한 시간에 잠시만 뒤돌아봐도 하느님은 언제나 차고 넘치게 베풀어주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그런 은혜를 받을만한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한 적이 별로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이를 두고 감사해야 할지 부끄러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염치없이 감사하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땅으로 갖고 내려오셨다. 그분의 말씀 안에 그리고 그분 안에 하늘나라가 있다. 그분이 우리 동네에 오셨고 우리와 함께 사시고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사신다. 그러니 마음을 바꾸고 그분 말씀을 귀담아듣고 마음에 새기고 말씀대로 살려고 해야 한다. 비록 그때처럼 오그라진 손이 펴지고, 시력과 청력을 되찾고, 죽은 이가 되살아나는 기적은 일어나지는 않지만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증거다. 당신의 증인이 되라고 나를 보내시고 내세우신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좋은 일들을 많이 해주셨다. 그분은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셨다. 단지 회개하고 당신과 복음을 믿기만을 바라셨다. 한 사람인 당신을 믿기 어려우면 당신이 하신 일들만이라도 믿어달라고 부탁하셨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믿기 보다는 그분이 일으키는 기적을 보고 즐기기만 바랐다. 또 어떤 이들은 그분이 포악한 권력자들을 몰아 내주기를 기대했다. 요즘 정당 대표들과 대선 예비후보들 언행들을 보면 초등학생들 말다툼하는 수준이다. 처음부터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세상은 그들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을 믿는 작은 이들이 움직인다는 믿음을 새롭게 한다. 바보처럼 한결같으신 하느님 때문에 부끄럽다면 지금 당장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미루다가 도둑이 드는 것처럼 그날이 덮칠 텐데 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정말 많이 고통스러울 거다. 그에 비하면 지금 겪는 부끄러움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닐 거다.
예수님, 부끄럽지만 또 결심합니다. 주님은 바보같이 그 결심을 또 철석같이 믿으십니다. 주님께는 거짓이 없으니 그러실 겁니다. 저도 거짓 결심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혹에 약하고 죄의 향수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넘어집니다. 그런데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또 결심하는 것은 주님이 성실하신 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자기연민에 빠져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잊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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