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9월 28일 화살표

9월 28일 화살표

 

알지만 그렇게 못한다. 담배가 해로운 줄 알지만 끊지 못한다.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용서해야 하는 줄 알지만 용서하지 못한다. 주님께서 항상 곁에 계신 줄 알지만 믿지 못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깨닫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그건 그냥 잘 모르는 것이다.

 

 

지식이 깨달음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노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코헬렛이 말하는 것처럼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렛 3,1).”

 

 

그러면 깨달으려는 나의 노력은 다 헛수고인가? 그럴 리 없다. 그렇게 노력하는 자에게만 그런 때가 도래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 9,20).”라고 멋지게 고백했지만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했고 부활하신 분을 만나 뵙고서야 그 고백의 뜻을 비로소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예수님도 세상 위에 사시는 동안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당신 제자들도 깨닫게 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스승님 곁에 머물렀고 그분의 말씀을 계속 들었기 때문이 그분이 다시 오셨을 때 알아 뵙고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는 동안 큰 업적을 남기지도, 세상을 바꾸지도, 진리를 깨닫지 못해도 한 곳을 바라보며 살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조급해하며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이루지도 바꾸지도 깨닫지 못해도 괜찮다. 나의 삶이 어떤 곳을 가리키는 작은 화살표로 기억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오늘도 걷던 쪽으로 한 걸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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