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어두운 부엌
살다 보면 짙은 어둠 속에 빠질 때가 있다. 나름 충실히 살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봉사 헌신했는데 자신의 본심을 몰라주거나 심지어 비난까지 들을 때도 있다. 보람과 칭송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면 충분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맞이하느라고 정말 분주했다. 얼마나 바빴으면 손님인 예수님께 놀고 있는 동생을 나무라 달라고 청했다(루카 10,40).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수고가 많다, 고맙다, 동생더러 도우라고 하마’가 아니었다. ‘너는 왜 그렇게 쓸데없이 분주하냐?’라는 꾸지람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그 이후 마르타의 반응이 궁금하지만 루카 복음사가는 전해주지 않는다. 어떤 신부님은 이렇게 상상하며 묵상했다. 마르타는 그 차가운 대답을 듣고 곧장 부엌으로 돌아가 부엌문을 걸어 잠그고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두운 그곳에 혼자 있다. 분노, 서러움, 슬픔으로 받은 충격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지난 생활들, 특히 왜 그렇게 분주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마음 안에서는 여전히 분노 서러움 슬픔이 되살아나 혼란과 고요가 자주 교차된다.
그 시간은 참 괴로운 시간이다. 마르카가 아무도 없는 어두운 부엌에 홀로 있었듯이 그 시간은 아무도 함께 해줄 수 없다.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온 우주에 홀로 버려졌거나 온 세상을 상대로 전쟁준비를 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시간은 벌거벗은 자신 그리고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그 시간을 회개의 때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시간이라고 칭하고 싶다. 누구나 한두 번은 이런 지독히 어두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도 그럴 것 같다. 곁에 아무도 있을 수 없어 지독히 고독한 시간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하느님이 온전히 그 옆자리를 차지하실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럴 때 이것을 기억해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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