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자비와 사랑만을 바라며
숲은 잘 정돈되어 있지 않은데, 그 안에 있으면 참 편안하다. 나뭇가지는 삐뚤빼뚤, 돌들은 여기저기, 다른 것들도 뒤죽박죽인데도 참 고요하다. 숲 속 어디선가 박새인지 참새인지 작은 새들이 먹을 찾아 바스락대며 나뭇잎더미를 뒤적이고, 그러다가 어디선가 딱따구리 같은 새들이 먹이를 찾는지 저 높은 곳에서 나무줄기를 쪼는 소리가 메아리치며 고요를 깨지만 여전히 편안하다. 그러다가 가끔 까투리인지 장끼인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푸드덕 날아올라 잠시 놀라게 하지만 금세 숲은 고요를 되찾는다.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 없는 것 같은데도 평화로운 것을 보면 숲에는 그 나름 질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수도원 안에는 많은 규칙이 있어도 조용하지 않다. 사람들이 없을 때면 기계가 말썽을 부린다. 우리도 숲 공동체처럼 살 수 없을까? 제 각각이고 제 나름대로 살아가도 그 안에 있는 이들에게 평화를 주는 그런 공동체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느님은 초대하시지만 우리는 명령하고 강요하고 비판하는 데 익숙하다. 그것이 거룩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외부적인 압력이 없으면 스스로 결심하고 그렇게 실천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제대로 되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한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수많은 규칙과 회의와 나눔, 결정과 계획에도 이 모양인데, 숲 공동체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평화를 주는 것일까?
어떤 이는 그들이 모두 오직 본능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도 그래야 할까? 아니다, 그랬다간 재앙 같은 혼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려 한다면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그런 공동체는 하늘나라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까지 이 소란스러움을 견디어낼 수밖에. 사실 순댓국을 먹고 싶은지, 추어탕을 먹고 싶은지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나? 오로지 주님의 자비와 사랑만 기대할 뿐이다.
Alberione, alberione, Catholic, catholic, content, contents, Contents, contents.pauline.or.kr, gospel, Gospel, FSP, fsp, pauline, Pauline, pauline contents, 카톨릭, 가톨릭, 교리, 교리교재, 꿈나무, 바오로가족, 바오로딸, 바오로딸 컨텐츠, 바오로딸 콘텐츠, 바오로딸컨텐츠, 바오로딸콘텐츠,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성바오로딸, 성바오로딸수도회, 성 바오로딸 수도회, 성바오로딸 수도회, 주일학교, 콘텐츠 바오로딸, 콘텐츠바오로딸, 알베리오네, 야고보 알베리오네, 이종훈, 이종훈 신부, 이종훈 마카리오 신부님, 이종훈 마가리오 신부님, 마카리오 신부님, 마가리오신부님, 마카리오신부님, 마가리오 신부님, 마가리오, 마카리오, rio, Rio, 구속주회,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cssr, 강론, 강론말씀, 복음강론, 강론 말씀, 복음묵상, 복음 묵상, 복음 강론, 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영원한기쁨, 영원한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