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8월 14일 거룩한 욕망 키우기
언젠가 나는 죽는다. 반갑지 않은 진실이지만 이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이에 복종하면 마음은 자유롭고 평화로워진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생기가 솟는다. 그 생기는 앞뒤 재지 않고 손익을 따지지 않고 좋고 선한 일을 서둘러 더 많이 하고 싶은 거룩한 욕망이다.
우리는 죽음을 선종(善終)이라고 부른다. 이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선생(善生) 복종(福終), 즉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끝마친다는 뜻이다. 결과는 이미 과정 안에 들어 있다. 결과는 과정의 축약이고 표현일 뿐이다. 그의 죽음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증언한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살과 피로 예수님 자신이다. 주님의 모든 삶이 그 안에 들어있다. 주님의 인생은 한 마디로 ‘내어 줌’이었다. 그래서 그분의 죽음도 그랬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 28).”고 말씀하셨다. 영성체로 주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고 주님처럼 다 내어주고 싶은 거룩한 욕망이 자란다.
순교자는 범법자였고 그 삶은 비참했고 그 죽음 처참했다. 지금 거룩한 전례 안에서 공경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순교자는 그 당시 사회이념과 국법은 어겼지만 하늘나라의 법은 충실히 지켰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살았고 예수님처럼 죽었으니 예수님처럼 부활해서 영원히 산다. 여기 삶은 잠깐이고 하늘나라의 삶은 영원하다. 하늘나라의 법을 충실히 지키다 보면 여기서는 바보도 되고 때로는 죄인도 된다. 그럴수록 거룩한 욕망은 더 커진다. 그렇게 커진 욕망 안에서는 죽음의 독침은 힘을 쓰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강을 건너는 수고일 뿐이다.
예수님, 성인과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뜨거워져 거룩한 욕망이 자라는 것 같지만 그때 뿐입니다. 뜨거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욕망을 자라게 하는 것은 실천입니다. 성인들의 희생과 순교자들의 숭고한 결단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주어진 소임이라도 충실히 수행하기를 그리고 가끔 주어지는 아무도 모를 작은 희생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희생과 봉사하는 기쁨을 더 크게 해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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