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7월 7일(첫 토요일 성모신심) 하느님의 기쁨

7월 7일(첫 토요일 성모신심) 하느님의 기쁨

 

뉴스나 여러 매체를 통해 세상 이야기를 듣습니다. 자연재해나 사고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안타깝고 속상하지만 폭력이나 속임수로 사람들이 죽거나 고통 받는다는 이야기는 그것을 넘어 화가 납니다. 이런 세상을, 이런 사람들을 하느님은 정말 사랑하실까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때도 인간의 폭력과 탐욕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살던 팔레스티나는 로마제국의 속국이어서 황제의 명에 따라 호적등록을 하러 모든 사람들이 고향땅으로 가야했습니다. 그들은 베틀레헴으로 가야했는데, 마리아는 만삭의 몸으로 나자렛에서 거기까지 약 100km를 여행해야했습니다. 호적등록은 세금징수와 전쟁이 났을 때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을 조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은 늘 그런 식입니다. 그런 세상에 하느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계셨다(잠언 8,23; 요한 8,58)고 믿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이 세상과 사람을 지어 만드시는 것을 다 지켜보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그분의 놀이터였고, 세상과 사람들은 그분의 기쁨이었습니다(잠언 8,31). 때가 차자 그분은 바로 그곳에 사람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당신의 놀이터였던 곳에서 사셨고 당신의 기쁨이었던 그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정작 그들과 함께 그곳에서 사시니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저처럼 크게 실망하고 속상하고 화나셨을까요? 예전에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살 때 그 마음이 변하셨을까요? 그 마음과 생각을 잊어버리셨을까요? 사람이라면 그랬겠지만 그분은 하느님이셨고 그 옛날이나 그 때나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분은 같은 분이십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분에게 기쁨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사시면서 행복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의 행복선언(마태 5,3-12)은 다 거짓말입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고 목수 일을 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마침내 억울하게 사형당한 사람을 어떻게 행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옳은 말씀과 좋은 일만 한 그분을 폭력적으로 살해한 그들도 당신의 기쁨이었을까요? 하느님은 변하지 않으신다는 사실과 당신의 마지막 말씀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는 말씀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하느님이시니까 우리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 당연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나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그것을 가르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웠던 분, 성모님께서 그래주실 겁니다. 그분을 낳아 기르며 죽음까지 지켜보셨던 분이시니 그 누구보다 그분을 제일 잘 아실 겁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어머니십니다. 무엇이든지 예수님 시키는 대로 하게 도와주시고 우리를 그분의 그 마음으로 이끌어주실 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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