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경계를 넘어
지금도 소중하지만 구약시대에 피는 신성한 것이었다. 피는 곧 생명이고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라서 자신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피를 쏟음은 큰 죄악이었다. 그 동네에서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그 여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더러운 죄인은 동네에서 물리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공동체에서 완전히 격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여인은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를 넘어섰다. 더러운 죄인이 신성한 하느님에게 손을 댔다. 그 여인은 감히 그분 앞에 서지 못하고 뒤에서 남몰래 그분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기를 바랐다. 그것은 그 여인의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자존감의 표현이었다. 죄인과 하느님, 죽음과 생명의 경계를 뛰어넘게 했던 것은 그 여인의 믿음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 믿음을 미신적이라고 평가 절하하지만 모든 것에서 완전히 소외된 그에게는 최대의 용기였다. 그녀의 규정 위반이 발각되었다면 어쩌면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몰랐지만 아니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겠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의 그런 상태를 아셨다. 그분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 세상은 그녀의 행동을 규정위반이라고 단죄하지만 하느님은 기특한 용기라고 칭찬하셨다. 그렇게 그 여인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왔다.
예수님은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려내셨고, 과부의 외아들을, 라자로를 살려내셨다. 그분에게는 죽음이 없다. 그분 안에는 절망이 없다. 그리고 당신도 부활하셨다. 저 두꺼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은 나에게 하느님을 믿으라고 호소한다. 그 믿음은 생명과 죽음 사이의 넘어갈 수 없는 경계를 단숨에 넘어가게 한다. 달에 집을 지으려고 하고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하는 이 시대에 믿음은 고리타분한가? 하지만 피를 만들지 못하고, 생명이 어떻게 생기는지 모른다. 단지 설명뿐이다. 그것은 하느님만 아시고 믿음은 그분에게로 넘어 들어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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