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대축일) 탈출과 믿음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집트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키셨다. 노예생활의 해방보다는 하느님께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계명대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탈출시키셨다(탈출 3,12; 7,16). 감옥에 갇혔던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를 탈출시킨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나라의 박해를 피해 고향땅과 친척 친지들을 떠나 오지로 가서 살았던 이유는 신앙을 지키며 하느님을 섬기며 살기 위함이었다. 많은 성인들도 세상을 떠나 광야나 수도원으로 들어갔고, 의로운 일에 헌신하였다. 이 모든 이들은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세상을 탈출했다. 아니 하느님께서 탈출시키셨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을 쫓아갔고, 사도들을 다시 잡아들였고, 숨어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내 다시 박해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서 세상은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으며, 일부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도 했다. 하느님은 당신이 온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신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섬기며 당신의 계명대로 살기를 바라신다. 그것은 그분이 폭군이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당신처럼 영원히 살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런 하느님이 싫어서 그분을 섬기는 이들을 박해하지만, 박해하면서 하느님을 만난다.
오늘날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지 않는다. 아니 무관심하다. 두려움 없이 신앙생활을 하지만, 뭔가 답답하다. 교회라는 튼튼한 울타리가 세상과 우리를 분리시키는 장벽이 된 것 같다. 세상의 관심사는 평등, 민주화, 평화, 복지, 자연환경보호 등이다. 이를 위해서 연대하기도 하고, 이것을 이루는 방법과 의식의 차이로 서로 대립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신앙과 교리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사실 교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런 것들을 선포했다. 세상이 교회를 모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모르는 것 같다.
하느님의 말씀은 올가미에 묶이고 감방에 갇혀 있을 수 없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퍼져나가는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당신을 섬기고 그분의 복음을 전하라고 당신의 사람들을 올가미와 감방에서 탈출시키셨다. 이기심과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올가미를 끊어 내주시고 세상사에서 분리된 체 거북한 예배를 드리는 감방에서 해방시켜주시려 하지만 사람들은 무엇이 두려운지 그냥 내버려두시라는 것 같다. 시몬 베드로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는 고백은 오늘 여기서도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사도들에 이어 오늘 우리도 계속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에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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