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듣기
한 소녀가 죽었다.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이 사흘 정도 그 시신 주위를 맴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소녀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달려가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마태 9,18).” 하고 말했던 것이다.
그 회당장이 예수님께 바랐던 것은 무엇인가? 시신 주위를 맴돌고 있을 그 아이의 영혼을 그 시신으로 다시 들어가게 해달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생기를 잃은 삶은 곧 영혼 없는 몸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가지만, 어디로 가는지, 왜 거기에 가는지, 그 끝은 어디고 거기에서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거나 아예 알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가고 있다고 여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때부터 삶은 생기를 잃는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그 소녀의 시신처럼 된다.
예수님께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아둔한 사람이라도 죽은 사람과 자는 사람을 구분 못하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도 딸의 죽음을 인정했지 않은가? 그 소녀는 분명 죽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자고 있는 것이었다. 그 시신 주위를 떠도는 그 소녀의 혼백이 당신께는 보였는지 어쨌는지 알 바 아니다. 그분에게는 죽음이 처음부터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분에게는 언제나 생명만 있었을 테니까.
예수님은 울고불고 소란스러운 군중들을 다 내쫓으셨다. 그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그 소녀를 일으켜 세우셨다면 당신의 신원을 증명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었을 텐데, 오히려 그분은 그들을 모두 그 소녀에게서 쫓아내셨다. 왜? 그 소녀의 죽음이 그 군중들과 연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야기와 평가들, 주장, 예측들을 듣는다. 시간이 한참이 지난 후에야, 심지어는 이 세상을 떠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어떤 것이 진실이었고 참된 것이었는지 밝혀지곤 한다. 진실과 진리는 하나이니 그 나머지는 모두 소음이다. 어떻게 진실과 소음을 구분할 수 있을까? 조언을 구해도 그 또한 소음일지 모르니, 그 앞에서는 결국 홀로 서 있는 게 낫겠다.
예수님은 군중을 다 쫓아내시고 자고 있는 그 소녀와 함께 계셨다. 그리고 그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셨다. 생기 잃은 내 삶, 죽은 듯이 자고 있는 나, 그 전쟁 같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깊은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아 하는 나의 손을 잡아 일으켜줄 이 누구인가? 또 다른 소음이 아닌 진실과 진리의 목소리로 나를 깨워줄 이 누구인가?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분이 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시도록 철저히 혼자 있어야 한다. 홀로 있음이 곧 외로움은 아니다. 외로움은 결핍이지만, 고독은 충만을 위한 준비이다. 그 시간은 우리 모두는 온전하고, 안전하다. 군중이 모두 쫓겨난 거기, 모든 소음이 사라진 그 시간에 생명의 주님께서는 여린 산들바람처럼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 말씀해주실 것이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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