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8월 9일 성전(+MP3)

나해 8월 9일 성전

모세는 하느님이 주시는 계명과 규정들을 전해주었다. 그것들은 그가 하느님을 얼굴을 맞대고 보면서 직접 들은 것들이다. 그때에는 성경도, 예언자도 없었다. 백성들은 그를 통해서만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하느님께서 세세한 규정까지 다 말씀하셨을 것 같지는 않고 그분을 직접 뵙고 대화한 모세는 그분이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알고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계명과 규정들을 만들어주었을 것 같다.

예수님은 모세와 예언자들이 전해 준 하느님 이야기를 들으셨다. 매일 성경을 읽고 암송하셨을 거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예수님의 하느님과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전하는 하느님은 왜 그렇게 달랐을까? 한 성서학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그분에게는 아주 특별한 통찰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율법과 성경을 연구했다면 예수님은 그것들이 가리키는 하느님을 직접 뵙고 그분과 직접 소통하셨다.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서 가르쳤다면 예수님은 두 번째 모세로서 하느님과 그분이 바라시는 것을 알려주셨다고 하겠다.

모세가 하느님 말씀을 전해주었다면 예수님은 하느님을 직접 보여주셨다. 그분의 마음을 표현해주셨다. 물론 우리 이해력은 한계가 있어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을 다 볼 수 없고 알려주신 것을 다 알아들을 수 없다. 왜 하느님의 아들이 저렇게 돌아가셔야 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당신 몸에 담아 살라버리시기 위해서, 그리고 외아들까지 내어주는 믿을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이것은 이해력 부족이 아니라 믿음이 완전하지 못한 탓이다. 사랑이 완전하지 못한 탓이다. 하느님과 통교하는 길은 이해가 아니라 믿음이다. 믿는 만큼 사랑한다.

구약의 백성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이 전해준 하느님 이야기를 들었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전해준 하느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그들을 통해서만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지만 우리는 예수님과 직접 소통한다. 그분을 뵈면 하느님을 뵙는 것이고, 그분의 말씀이 곧 하느님의 마음이다. 예수님은 하느님 말씀의 완전한 번역이다. 이게 바로 하느님이 바라셨던 일이었을 거다. 죽기까지 하느님 뜻에 순종하고 헌신하셨던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이 내 안에 자리하고 나를 남김없이 다 차지하시는 것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그렇게 떠나시는 게 우리에게 이롭다고 말씀하셨을 거다(요한 16, 7). 예수님은 성전을 정말 사랑하셨다. 그렇게 폭력적으로 성전을 정화하려고 하신 것이 그 사랑이다. 그 성전은 무너졌다. 그리고 이제 진짜 성전, 인간의 손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는 성전이 내 안에 지어졌다. 그 성전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있다.

예수님, 저는 주님이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하신 것처럼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저의 활동들이 주님 사랑의 표현이라고 말은 하지만 진짜 속내는 제게 책무로 주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 사랑을 완성시켜가는 중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하느님 사랑이 완성되는 날까지 저를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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