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대열] 201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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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2월24일 사순 제 1주일 화요일 복음묵상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야55,11)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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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언어를 만드는 것일까요? 아니면 언어가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질문입니다.

 

생각은 언어를, 언어는 생각을 만들어갑니다.

생각 역시 언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언어 역시 생각이 없으면 진행이 될 수 없습니다.

듣지를 못해 언어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 역시 생각은 언어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생각이 없다면 언어는 조합을 이루어낼 수가 없습니다.

분명 언어와 생각, 생각과 언어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 말은 생각이 언어를 지배할 수도 있고, 언어가 생각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은 헛됨이 없고, 말씀에는 반드시 책임을 지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할 때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하십니다.

 

참 많은 말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허튼 말, 공허한 말도, 소음인 말, 상처를 주는 말도 있습니다.

필요한 말, 알맹이가 있는 말도, 감동을 주는 말, 상처를 아물게 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죽이는 말도, 누군가를 살리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가 의식해야 할 것은 자신의 입으로 나오는 말이 적어도 누군가를 죽이는 말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을 죽이는 언어는 결국 자신을 죽이는 언어가 되고 맙니다.

언어의 존재이유가 타인과의 의사소통이라고 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과의 소통이며, 이 소통이 내면적 통합을 이루어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입을 통해서 세상 바깥으로 나간 수없이 많은 말들은 어디에선가 누군가의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그에 상응하는 열매를 맺고 있을 것입니다. 좋은 말이었으면 좋은 열매일 것이고, 나쁜 말이었으면 나쁜 열매이겠지요.

언어는 생각을 넘어 마음의 거울 일 수 있음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뒤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우리여야만 할 것입니다.

 

한가지 좋은 글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침묵과 언어]

침묵은 언어로 가득 채워진 풍요로운 세계이다.

침묵은 단지 언어의 포기가 아니라 잘 말하기 위한 조건이다.

 

말이 끝나면 침묵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생각인지도 모른다.

 

침묵은 처음부터 무수한 언어를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언어가 우리를 위해 있는 것처럼

침묵도 우리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침묵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말하기 시작한다.

침묵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언어의 명료한 의미를 알아듣게 된다.

 

우리의 언어는 소리와 의미가 구별되지만

침묵은 하나의 언어를 지닌다.

 

우리는 잡다한 소음들이 그칠 때

침묵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세상과 삶과 질병과 고통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한스 발호프, 1977, 성바오로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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