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대열] 201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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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2월27일 사순 제 1주간 금요일 독서묵상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에제키엘18,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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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키엘 예언자는 정말로 우리가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희망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그 얼마나 큰지를 알려주는 명확한 말씀입니다.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혹시 이 말씀을 나와는 상관없는 악행을 일삼는 이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예외 없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틀 전 묵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저 악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생각이 아니라, 선한 사람이 되겠다는 적극적인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하였을까요?

단지 신앙이란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한다는 의미였을까요?

아닙니다.

물론 죄를 짓지 않겠다는 마음이 분명 죄를 피하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우리는 죄인의 모습으로 살다가 삶을 마무리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의 삶을 깨끗하게 인정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은 죄를 상쇄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이를 가톨릭적 용어로 보속(補贖)의 삶이라고 합니다.

보속은 철저하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며 다시 잘 살아보겠다는 결단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단이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선의 실천이 보속의 행위인 것입니다.

 

예언자 에제키엘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악인의 죽음이 아니라, 악인이 선한 길로 돌아서는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뉘우침과 보속의 삶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에제키엘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깊이나 횟수가 아니라, 뉘우침의 진정성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보시고 평가하시는 하느님이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이해가 가능할 때,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하느님이 아니라, 복음이 말하는 사랑의 하느님을 비로소 만나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용서를 청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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